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만수(朴萬壽)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2803898
  • 전몰일자 : 19520725

공훈사항

박만수 일등중사는 1927년 9월 15일에 서울특별시 용산구 후암동에서 출생했다. 그는 1949년 9월 17일 경기도 시흥에 위치한 제17연대로 현지 입대했다. 연대는 건군 초기의 혼란을 안정시키는 작전에 참여하다가, 3월 1일부로 옹진지역에 투입되어 전투를 수행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제17연대는 6월 26일 인천으로 철수했다.
박만수 일등중사는 제5사단이 10월 8일에 대구에서 재창설되면서 제36연대로 재배치되었다. 제5사단은 국군과 유엔군의 주력이 북진작전을 한창 진행할 때인 10월 13일부터 11월 22일까지 영남 지역 후방지역작전에 투입되면서 적 게릴라들을 소탕했고, 이후 가평, 청평, 춘천 일대에서 공비토벌작전을 완수했다.
1951년에 접어들면서 사단은 가평-횡성-영주-안흥 일대에서 격전을 치르면서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공세)와 2월 공세를 막아냈다. 계속해서 사단은 횡성 일대의 태기산, 소양강-인제지역, 홍천북방지역 전투 등에 투입되어 중공군 춘계 공세를 막아 내면서 적의 종심기동을 저지했다. 5월 하순 공세로 전환한 사단은 6월 4일 원통 북방 서화리 일대의 후덕리-981고지-산두곡산(1,019고지)을 향해 공격하여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점령했다.
8월에 접어들어 美 제10군단은 강원도 양구 일대 해안분지(펀치볼) 확보작전을 실시했다. 제36연대는 8월 16일 오전 8시 부로 美 제2사단에 배속되었다. 연대는 캔자스선 진지를 감제하며 위협을 주는 양구 북방 983고지-940고지-773고지를 잇는 ‘피의 능선(Bloody Ridge)’을 美 제9연대와 공격하여 9월 7일 목표를 완전히 탈취했다.
‘피의 능선’을 점령 후 제36연대가 복귀한 제5사단은 연대별 또는 3개 연대로 양구 일대 가칠봉 북쪽의 1,211고지를 10월 9일까지 공격하여 세 번씩이나 목표를 점령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 때마다 사단은 적의 역습에 이를 상실하여 10월 14일 가칠봉 부근 전투를 종결하고, 양양으로 이동하여 부대정비와 교육훈련을 하면서 수색정찰 및 매복 작전에 전념했다.
사단은 1952년 1월 23일부터 제1군단 배속으로 동해안 554고지–351고지-감호 일대를 잇는 전선방어에 투입되었다. 전선은 7월 초순까지 소강상태가 지속되었다. 마침내 적 제9사단이 7월 10일 야간 10시에 대규모의 공격준비사격에 이어 전초진지인 351고지를 집중 공격하여 진지가 피탈되었다. 사단은 즉각 역습으로 주방어선을 지켜냈으며, 11월 초까지 몇 차례의 소규모 침공을 격퇴했다. 박만수 일등중사는 7월 25일 소대원을 지휘하며 중대 규모의 적과 교전 중 적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만수 일등중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유해(40묘역-1판-16837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4-ㅂ-077)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