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만수(朴万洙)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22088
  • 전몰일자 : 19500706

공훈사항

박만수 일병은 경상북도 금릉군 조마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도 불구하고 정치 및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혼란스러웠던 1949년 7월 초순, 서울 용산의 제2연대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예하 대대로 배치되었다. 이후 제2연대는 1950년 6월 12일에 홍천으로 이동하여 제6사단에 예속되었고, 제8연대로부터 방어진지를 인수해 홍천 북방의 42km의 방어 정면을 담당했다.
제2연대 장병들이 제8연대로부터 진지를 인수했을 때에 진지에 철조망이나 대인지뢰가 없었고, 새로 구축할 시간적 여유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연대는 전쟁 발발 직전에 남침을 예견하는 북한군의 수상한 움직임이 포착되어 장병들의 외출·외박을 통제하면서 고도의 경계태세를 유지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연대 장병들은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북한군의 기습적인 공격을 받았다.
박만수 일병이 소속된 제2연대는 경계지역전투(음양리, 막장골, 어론리), 주저항선 전투(어론리, 자은리, 철정리), 최후저항선전투(철정리, 한계리, 성산리)에서 적 자주포를 파괴하기 위해 57mm 대전차포를 운용하고, 대전차포가 없으면 특공조를 운용했다. 또한 지형의 이점을 이용하여 반격하는 등 공세적인 전투로 홍천 북방에서 적 부대의 진출을 3일간이나 지연시켰다.
제2연대 장병들은 최선을 다해 싸웠으나 중과부적으로 6월 29일에 홍천에서 철수하여 지연전을 실시하며 횡성-원주를 거쳐 7월 2일에는 충주로 이동했다. 이곳에서 남한강이라는 지형의 이점을 이용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했으나, 7월 4일부터 북한군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았다. 그는 초기전투부터 불사조처럼 용감하게 싸웠으나, 7월 6일 전투에서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만수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08판-2면-247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8-ㅎ-03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