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만수(朴万壽)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0111517
  • 전몰일자 : 19501012

공훈사항

박만수 이병은 1926년 11월 21일 경상북도 대구시 남산동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이 발발하고 국군이 북한군의 남진으로 낙동강 선까지 철수하자 조국을 지키고자 일어섰다. 박 이병은 1950년 8월 28일 대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했다. 당시 상황이 워낙 긴급했기에 그는 소총 분해결합 정도의 간단한 기초군사훈련을 마치고 제7사단 제8연대에 배치되었다.
박 이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북한군의 9월 공세를 맞이하여 낙동강방어선에서 최후의 일전을 벌이고 있었고, 제7사단은 영천전투에서 적과 공방 중인 상황이었다. 사단은 9월 5일부터 9일까지 영천 동북방의 조교동과 영천 남방의 오수동, 채약산 일대에서 북한군 제15사단의 진출을 저지하고, 9월 10일 반격으로 전환하여 13일까지 적과 치열한 전투 끝에 적 제15사단을 포위 격멸함으로써 낙동강방어선 최후의 위기를 극복하고, 반격의 발판을 만들었다.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함에 따라 국군은 9월 16일부로 반격작전으로 전환했다. 이때 연대는 안강 북쪽의 도덕산 방면으로 진격하여 치열한 전투 끝에 적을 격퇴함으로써 2주간 공백상태로 있던 국군 제1군단과 국군 제2군단 경계지역의 간격을 메우게 되었다. 9월 19일 연대는 수도사단 제18연대와 함께 합동으로 기계 일대 561고지를 공격해서 점령했다. 이후 연대는 수도사단과 함께 격전 끝에 완강히 저항하는 적을 물리치고, 21일 도덕산을 점령하고 기계를 탈환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추격작전의 발판을 마련했다.
국군은 9월 22일부로 추격작전으로 전환했다. 이때 사단은 미 제8군 예비로 경주에 집결해 있다가 9월 29일 제2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었다. 사단은 제8사단을 후속하여 경주-안동-문경-충주를 거쳐 10월 7일 서울의 돈암동에 도착했다.
10월 8일 양문리에서 38도선을 돌파한 연대는 김화를 거쳐 11일 평강에 진출하여 이 지역 잔적소탕을 했다. 이 추격전에서 박 이병은 선두에서 진격했고, 평강지역 잔적 소탕작전에서도 앞장서서 적을 찾아 격멸하다 10월 12일 북한군 패잔병의 기습을 받고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만수 이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01판-6면-094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9-ㄱ-08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