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만수(朴萬洙)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0604810
  • 전몰일자 : 19520919

공훈사항

박만수 이등중사는 1932년 7월 19일 부산시 부산진구 부전동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1년 3월 28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 훈련을 수료한 후 수도사단 기갑연대에 배치되었다.
박만수 이등중사가 소속된 연대는 평창 일대에서 대관령 방향으로 조심스러운 반격작전을 계속해 설악산으로 진출하였다. 중공군은 1951년 4월 22일 서울을 목표로 제5차 공세를 감행하였다. 그와 연대병력은 사력을 다해 싸웠으나 끝내 북한군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하고 고지를 빼앗기고 말았다.
박만수 이등중사와 연대병력은 1952년 5월 화천 일대 금성천 북안 일대에서 정찰 활동을 수행하다 북한군과 마주치게 되어 순간적으로 서로 총알이 빗발치듯 오가는 교전에서 중공군의 여러 명을 사살하였다. 박 이등중사가 소속된 연대는 6월 16일 군단의 전투지경선 조정에 따라 교암산 동쪽 765-690고지-북한강 동안 어운리 선을 주저항선으로 575고지, 지형능선, 수도고지 등에서 전초를 운용 중이었다. 이후 7월과 8월 수도고지와 지형능선에서 각각 한 차례씩 일진일퇴의 공방전이 전개되었으며 그 뒤 8월 중순에 접어들어 다시 교착상태로 들어가게 되었다.
9월 6일 북한군은 기갑연대 제5중대가 배치된 지형능선과 제6중대가 배치된 575고지에 맹렬한 공격준비사격과 더불어 각각 1개 중대 병력으로 공격을 개시해 왔다. 지형능선상의 전초소대는 오후 9시경 수명의 생존자만이 철수하면서 능선을 북한군에게 내어주고 말았다. 박 이등중사와 연대병력은 6차에 걸친 역습에도 불구하고 탈환에 실패하였으나 7차에 걸친 치열한 역습으로 탈환에 성공하였다. 이후 9월 19일까지 수차례에 걸친 북한군의 공격을 격퇴하면서 진지를 사수하였다.
그는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삶과 죽음의 감각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언제나 앞장서서 전투에 임했던 박만수 이등중사는 1952년 9월 19일 김화 부근 전투에서 치열한 백병전을 펼치던 중 북한군의 집중사격을 받고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만수 이등중사의 혁혁한 전공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09915 육)을 추서하고 유해(18묘역-6판-3963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06-ㅍ-06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