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만수(朴萬洙)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8817575
  • 전몰일자 : 19530701

공훈사항

박만수 이등중사는 경상북도 칠곡군 북삼면에서 1929년 5월 5일에 출생하였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다. 박 이등중사는 1952년 4월 4일 입대 후 제8사단 제10연대에 배치되었다.
제8사단은 1952년 3월 23일 미 해병대 제1사단의 854고지 지역을 인수 후 8월 말까지 소규모 수색정찰전을 수행했다. 9월 중순 북한군 제45사단과 중공군의 파상공격으로 854고지가 탈취되었으나, 미 항공기, 함포지원, 군단포병 화력지원으로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854고지를 재탈환했다.
9월 말에는 미주리선(가리봉산~인제 북방~원통 북방~미시령~속초를 잇는 선) 방어 임무를 미 제45사단에 인계하고 미 제9군단으로 배속 변경되었다. 제8사단은 10월 중순 미 제9군단으로부터 제2군단으로 배속되어 중동부전선의 요충지인 수도사단 작전지역인 수도고지·지형능선을 인수했다.
제8사단은 1952년 10월 25일 강원도 김화군으로 이동하여 수도사단으로부터 수도고지 일대의 작전지역을 인수했다. 수도고지는 1952년 9월간 국군수도사단과 중공군 제34·제35사단 간에 수차례의 공방이 벌어졌던 해발 600m 능선 상의 고지이다. 수도고지는 그 위치나 규모로 보아 다만 전초에 불과했다.
오히려 수도고지는 적 주저항선의 700m 고지들보다 낮아 적의 감제관측을 허용하여, 주간에는 진지공사나 보급추진 등이 불가능한 곳이었다. 그러나 수도고지는 피아간의 주요 결전장이 되어 왔고 이러한 연유로 결코 상실해서는 안 될 고지로 인식되었다. 제10연대는 수도고지 인수 이후 진지 방어와 일대의 수색을 강화했다.
제8사단 제10연대 장병들은 당시 수도고지의 주저항선을 담당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중공군은 연막탄과 전차 및 포병지원을 받으며 수도고지 진내까지 공격해왔다. 제8사단 제10연대 장병들은 진내에서 중공군과 백병전을 벌이게 되었다. 이때 중공군은 6월 12일 포병지원과 함께 대대적 공격을 가하여 이틀 만에 수도고지를 점령하였고, 제8사단은 주저항선이 붕괴됨에 따라 철수하게 되었다. 박 이등중사는 철수하는 과정에서 분전 끝에 1953년 7월 1일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박 이등중사는 전쟁 기간 동안 불타는 애국심과 강인한 군인정신으로 전투에 참여하여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만수 이등중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유해(52묘역-1판-27152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65-ㅁ-088)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