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만수(朴萬洙)

  • 군별 : 육군
  • 계급 : 상병
  • 군번 : 8812080
  • 전몰일자 : 19530704

공훈사항

박만수 상병은 1930년 8월 13일에 충청북도 옥천군 안내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지루한 휴전협상이 진행되던 1952년 3월 25일,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6사단 제2연대로 배치되었다.
박만수 상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4월 하순, 제6사단은 봉화산(477고지)-교암산(770고지)을 잇는 고지군에 방어진지를 편성하고 있었다. 사단은 교착상태에 빠진 휴전회담의 타결을 위한 정전전략을 기조로 한 작전개념에 따라 공격보다는 방어에 역점을 뒀다. 그리고 야간 매복과 수색작전을 강화하여 정보수집을 위한 포로획득에 주력했다. 그리고 전초진지와 주진지를 보강하여 적 침공에 대비하면서 사기의 진작과 지형의 숙달 그리고 부대의 재정비를 위하여 정기적으로 부대 교대를 실시했다.
당시 공산군이 휴전협상을 지연시키면서 전투력을 증강하자, 유엔사는 휴전협상을 촉진하기 위해 공산군에게 군사적 압박을 가하기로 했다. 연대 장병들은 6월 12일에 방어진지 전방의 감제고지(금성천 동북방 A, B고지)에 대한 공격을 실시하여 치열한 전투 끝에 6월 15일에 탈취했다. 적들은 큰 피해를 받고 더는 역습을 하지 않았고, 휴전협상은 속도가 붙었고, 전선은 다시 소강상태로 전환되었다. 이후 각 연대는 교대로 전방방어지역을 담당했다.
박만수 상병이 소속된 제2연대는 1953년 2월 5일부로 전방방어지역인 교암산 지역을 담당했다. 그리고 5월 17일부로 사단의 예비로 전환하여 야간 매복작전과 주간 위력수색작전에 중점을 두면서 교육훈련에 집중했다. 그러던 중 좌인접부대인 국군 제8사단 지역이 6월 10일부터 중공군의 공격으로 위기에 처하자, 제2연대는 6월 13일부로 제8사단에 배속되어 적의 공격을 격퇴하고 6월 16일에 사단으로 복귀하여 봉화산-442고지 방어진지를 담당했다. 장병들은 다시 방어진지 보강과 수색작전에 집중했다. 그가 소속된 소대는 7월 4일에 방어진지 전방으로 수색작전을 나갔다가 적 침투부대를 발견하여 치열한 전투 끝에 격멸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만수 상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36판-6면-260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5-ㄷ-10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