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만복(朴萬福)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K1108191
  • 전몰일자 : 19510820

공훈사항

박만복 일병은 1931년 3월 6일에 경상남도 동래군 일광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저지하던 1950년 8월 18일, 경남 부산의 육군 제2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카투사(KATUSA) 병으로 분류되어 미 제25사단에 배치되었다.
박만복 일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때, 미 제25사단은 무주-금산-전주 일대에서 후방지역 게릴라 소탕작전을 실시하고 있었다. 이후 11월 2일에 후방지역작전 임무를 국군 제3군단에 인계하고, 11월 15일에 평양 북방의 개천 일대로 이동하여 미 제9군단에 배속되었다. 사단은 11월 24일에 유엔군의 2차 총공세(일명 추수감사절공세) 시에 운산에서 온정리 방향으로 공격했으나, 중공군의 기습으로 후방이 차단되어 철수를 거듭하여 12월 중순에 임진강 하류 제방을 연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사단은 1950년 12월 31일 야간에 중공군 대규모 공격을 받아 서울에서 철수하여 천안 일대로 이동하였다. 이후 1951년 1월 25일부터 시작된 반격작전에 의해 수원-김량장선을 확보하고, 2월 12일부터 시작된 중공군의 2월 공세를 저지한 후 2월 21일부터 시작된 반격작전(Killer작전)으로 영등포 부근의 한강 연안으로 진출한 후 한강도하작전을 준비했다.
사단 장병들은 3월 7일부터 양수리 부근에서 도하하여 3월 15일에 금곡리-청평에 이르는 경춘선을 확보하고, 죽엽산-왕방산을 목표로 공격하여 28일에는 포천을 점령했다. 계속 공격하여 4월 21일에는 금학산-장흥리 일대까지 진출했다. 그러나 4월 22일부터 시작된 중공군의 4월 공세를 김화-포천 축선에서 축차적인 지연전을 펼치며 철수하여 쌍문동-덕소를 잇는 선에서 중공군의 4월 공세를 격퇴했다.
박만복 일병이 소속된 미 제25사단은 다시 반격작전으로 동두천 선까지 진출했으나, 5월 16일부터 시작된 중공군의 5월 공세를 맞아 다시 의정부까지 철수했다. 이후 중공군 공세를 저지하고 5월 20일부터 반격작전으로 동두천 선을 다시 확보했다. 계속 공격하여 6월 15일까지 김화를 점령하고 방어로 전환했다. 이후 휴전협상이 진행되면서 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되었고, 사단은 방어진지 강화에 집중했다. 그가 소속된 소대는 8월 20일에 방어지역 내로 수색작전을 나갔다가 적 침투조를 발견하여 격렬한 전투 끝에 격멸했다. 이날 그는 전투 중 적의 총탄에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만복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90-ㅊ-08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