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만보(朴萬寶)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20651
  • 전몰일자 : 19500915

공훈사항

박만보 일병은 경상북도 경산군 진양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0년 6월 26일 육군에 입대하였다. 그 시기에 입대하였던 장정들은 기초군사훈련 과정조차도 제대로 거치지 못하고 전선에 배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박 일병 역시 워낙 긴급한 상황에 따라 기초군사훈련만을 수료한 후 수도사단에 배치되었다.
박만보 일병이 전선에 배치될 당시 수도사단은 제1연대와 제18연대로 편성되어 있었다. 사단은 미군이 방어하고 있던 금강선과 대평리 선이 위태롭고 또 청주 국사봉 방어선이 언제 돌파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7월 17일 보은을 거쳐 20일 안동 부근으로 이동하였다. 북한군 제12사단이 안동 북쪽에서 계속 공격해오자, 박 일병과 장병들은 8월 1일 안동 북쪽 일대에서 국군 제8사단을 엄호하면서 낙동강 남쪽으로 철수하였다. 박 일병과 장병들은 8월 5일부터 적의 대규모 공격을 받기 시작하였다. 그때 부대 장병들은 진지 후방으로 침투한 북한군과 치열하게 싸웠으나 역부족으로 다음날 의성 일대로 다시 철수하였다. 결과적으로 청송-기계 축선이 무방비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북한군 제12사단은 9일 기계를 점령한 후 포항으로 전진할 때까지 거의 저항을 받지 않았다. 이들은 이미 보현산 일대에 침투한 제766부대와 연결을 지으면서 전차 및 지원포병으로 증강된 1개 연대 규모의 병력을 투입하고 주력을 후속시키고 있었다. 박만보 일병과 일부 병력은 16일 안강 북쪽 양동리 지역에서 북한군과 공방전을 벌여 기계를 탈환하는 데 성공하였다. 북한군의 9월 공세가 시작되자, 박 일병과 장병들은 9월 4일부터 경주 북방에 있는 호명리와 곤제봉, 무릉산 일대에서 치열한 공방전을 벌여 북한군을 물리쳤다.
박 일병은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삶과 죽음의 감각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조국을 우리 손으로 지켜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박만보 일병은 1950년 9월 15일 무릉산 부근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만보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03-ㅅ-04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