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만노(朴萬勞)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45357
  • 전몰일자 : 19500915

공훈사항

박만노 일병은 경상북도 대구시 신암동에서 출생했다(출생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저지하던 1950년 8월 중순,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5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카투사(KATUSA)로 선발되어 미 제5병기대에 배치되었다.
박만노 일병이 소속된 병기중대는 미 제2사단을 직접지원했다. 즉 사단과 함께 행동하며 장병들에게 개인화기 및 공용화기를 보급하거나 정비 지원을 했다. 그가 부대로 전입했던 9월 초순, 미 제2사단은 낙동강돌출부 지역을 방어하고 있었다. 8월 24일부로 미 제24사단으로부터 방어지역을 인수한 미 제2사단은 예하 부대의 배치와 관련하여, 제9연대를 남쪽의 클로버고지-오봉리능선을, 제23연대는 중앙의 창녕 정면을, 제38연대는 북쪽의 현풍 정면을 담당하게 했다.
북한군은 8월 31일 밤 9시에 제23연대 정면으로 도하하여 일제히 공격을 개시했다. 적 주력은 9월 2일에 부곡리를 거쳐 본초리까지 진출하여 창녕을 위협했다. 적은 9월 3일부터 8일까지 끈질기게 공격했으나, 미 제23연대의 방어선을 뚫지 못하고 공격의 한계점에 도달하여 9월 9일부터 방어로 전환했다. 한편 미 제38연대가 8월 24일부터 현풍 서쪽에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했다. 이후 북한군은 8월 31일 밤부터 최후의 격렬한 공세를 취했다. 이어 9월 3일 현풍을 점령하고 계속 동쪽으로 진격했다. 미 제38연대는 현풍 서쪽에서 한국 경찰대와 영 제27여단 정찰대의 신속한 증원을 받아 혈투를 벌인 끝에 적의 공격을 격퇴했다.
박만노 일병이 소속된 병기중대는 전투 현장에서 직접 뛰어다니며 병기 및 장비를 지원하여 전투력을 지속시키는 데 기여했다. 그러던 중 박 일병은 9월 13일에 병기지원을 하다가 적의 공격을 받고 전투를 하다가 적의 총탄에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9월 15일에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만노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89-ㄷ-06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