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만기(박만기)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750470
  • 전몰일자 : 19520301

공훈사항

박만기 하사는 출생일자와 출생지에 대한 기록이 없다. 박 하사는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났다. 박 하사는 1951년 9월 15일에 입대 후 제9사단 직할부대에 배치되었다.
박 하사의 입대 당시, 아군은 적군이 휴전회담을 제의한 이유가 전력 정비를 위한 시간 확보에 있음을 간파했다. 이에 아군은 일명 ‘코만도 작전’이라는 추계공세를 대대적으로 펼쳤다.
제9사단은 1951년 10월 5일에 다시 미 제1군단에 배속되었고, 10월 17일에 미 제3사단이 맡고 있던 395고지(백마고지) 일대의 방어진지를 인수하여 중공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이후 제9사단은 11월 3일부터 281고지, 395고지 등에서 전초진지 쟁탈전을 전개하였다.
한편 휴전회담장에서는 협상을 진행하였고, 마침내 유엔군과 북한군은 1951년 11월 27일에 현 전선을 잠정 군사분계선으로 하는 것에 합의하였다.
이에 따라 전선은 소강상태로 접어들었으며 큰 전투 없이 소규모 전초진지 전투와 전투정찰 위주의 탐색전이 1952년 전반기까지 지속되었다. 이후 국군 제2군단이 1952년 4월 5일에 재창설되어 전선에 투입됨에 따라, 전선이 조정되어 사단은 미 제9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었다.
사단의 좌전방에 배치된 연대는 1952년 4월 19일에 사단 정면에 위치하여 아군의 관측과 기동에 제한을 주던 300고지를 기습했으며, 적의 방어시설을 파괴하고 적병 일부를 사살한 후에 철수했다.
이후 연대는 김화지구에서 전초 쟁탈전과 포로획득전, 전투정찰을 지속했다. 하지만 박 하사는 1952년 3월 1일에 수색작전 중 적탄에 맞아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만기 하사의 혁혁한 전공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21-ㅈ-032)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