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만규(朴萬圭)

  • 군별 : 해병
  • 계급 : 하사
  • 군번 : 9100238
  • 전몰일자 : 19500921

공훈사항

박만규 하사는 서울시 성동구 성수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1949년 8월 1일 진해 해병대 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 군사훈련 과정을 마친 후 1949년 10월경 김성은부대에 배치(1950년 12월 부대개편 후 해병대 제1연대 예속)되었다.
박 하사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국내는 여·순 사건(1948.10.19.) 이후 잔여 공비들이 지리산을 근거지로 하여 주변 일대의 도시와 촌락의 치안을 교란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에 해병대 김성은부대는 1949년 8월 29일부터 진주지구 공비 토벌작전을 수행하고 있었고, 박 하사는 10월경 부대에 배치되어 12월 26일까지 동 작전에 참여했다.
진주지구에서 성공적으로 공비토벌작전을 완수한 김성은부대는 12월 26일 제주도로 이동하였다. 이후 박 하사가 소속된 부대는 제주도 공비토벌 작전(1949.12.28.-1950.7.12.), 장항·군산·이리지구 전투(1950.7.14.-7.20.), 함양·진주지구 전투(1950.7.23.-7.31.), 진동리지구 전투(1950.7.31.-8.13), 통영지구 전투(1950.8.17.-8.19.)를 수행했다. 통영상륙작전은 해군·해병대가 최초로 성공시킨 단독 상륙작전이었을 뿐만 아니라 6·25전쟁 이래 후퇴와 철수를 반복하며 방어만 하던 중 유일한 공격작전이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고 있다.
이어서 박 하사가 소속된 제3대대는 인천상륙작전(1950.9.15.-9.17)에 참가했다. 인천을 경비하던 적의 주력은 서울지역으로 퇴각하고 잔여 부대는 서울을 방어하기 위한 시간을 벌기 위해 부평 일대 지역에 연대규모의 병력이 배치되어 아군의 진격을 저지하고 있었다. 제3대대는 미 해병대 제5연대에 배속되어 9월 17일부터 9월 20일까지 소탕작전을 실시하여 큰 전과를 거두었다. 김포를 경비 중이던 약 2개 대대규모의 적은 인천과 부평지구에서 도주해온 패잔병들과 합류하여 9월 20일 오후 3시경 대부분 한강을 도하했다. 한강을 도하하지 못한 패잔병들은 배수진을 치고 김포를 사수하려 했다.
김포지역을 점령하고 경계 중이던 제3대대와 적 패잔병들 간 9월 21일 교전이 벌어졌다. 박 하사는 분대를 지휘하여 적을 격퇴하기 위해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만규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유해(21묘역-3판-1340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으며,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1-ㅂ-059)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