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만규(朴滿圭)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9802525
  • 전몰일자 : 19520224

공훈사항

박만규 일병은 1924년 11월 8일 경상남도 밀양군 삼랑진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0년 8월 15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마친 후 제1사단 제11연대에 배치되었다.
박만규 일병은 전선에 투입되어 다부동-군위 일대에서 대구를 방어하고 있었다. 박 일병이 소속된 연대는 1950년 9월 28일 서울 수복작전에 기여하고 9월 말 38도선에 도달하였다. 이후 10월 9일에는 38도선을 돌파해 19일 평양에 선두로 입성하는 수훈을 세웠다. 박 일병과 연대 장병들은 10월 23~24일 안주 일대에서 청천강을 도하한 후 25일 운산에 도착하였다.
박만규 일병이 소속된 연대는 파평산에서 중공군의 집요한 공격을 지연시켰다. 그를 비롯한 장병들의 투철한 전투의지에 따라 중공군은 서울점령을 포기하고 주력을 동부전선으로 전환하였다. 1951년 5월 16일 중공군이 강원도 인제군 현리에서 대규모 공세를 감행하였지만 서부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되었다. 사단은 5월 20일 문산-포천을 연하는 토페카선을 점령한 후 캔자스선상의 영평을 확보할 목적으로 박 일병과 연대병력을 문산 축선에 투입하여 병진공격을 개시하였다. 다음날(21일) 박 일병이 소속된 연대는 문산천 북쪽의 가좌현 부근에 배치된 적의 박격포와 중화기 사격을 받아 문산천 도하에 실패하였다.
1951년 12월 28일-1952년 1월 8일간에 문산 정면의 임진강 북쪽 두매리 부근에서 사단과 중공군 간에 전초진지 쟁탈전이 벌어졌다. 박만규 일병과 연대 장병들은 주저항선을 임진강 북안의 사천-백학산-사미천을 연하는 선으로 추진하여 북한군과 대치하였고, 달려드는 북한군을 상대로 수류탄과 백병전으로 혼신의 혈전을 벌인 끝에 이를 격퇴하였다. 2월에 접어들어 여전히 대규모 공격작전을 보류하고 계속 정찰과 기습을 통하여 북한군과 접촉을 유지하며 방어진지를 더욱 강화하였다.
박 일병은 매사에 적극적이었고 언제나 앞장서서 북한군을 물리치는 용맹을 발휘하였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박만규 일병은 1952년 2월 24일 장단 부근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만규 일병의 혁혁한 전공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95590 육)을 추서하고 유해(31묘역-판-24440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14-ㄲ-03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