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만규(朴萬圭)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9706290
  • 전몰일자 : 19520827

공훈사항

박만규 이등중사는 1929년 12월 27일 경상북도 의성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유엔군과 공산군이 휴전협상으로 38도선 일대에서 소규모 고지쟁탈전만을 실시하고 있던 1951년 9월 초순 제주도 서귀포시 모슬포에 위치하고 있던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 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사단 제12연대에 배치되었다.
박만규 이등중사는 두매리 전투에 투입되어 1951년 12월 28-1952년 1월 8일 간에 문산 정면의 임진강 북쪽 두매리 부근에서 전초진지 쟁탈전을 벌였다. 박 이등중사가 소속된 연대는 주저항선을 임진강 북안의 사천-백학산-사미천을 잇는 선으로 추진하여 중공군 제63군 예하 제188사단과 대치중이었는데, 그가 소속된 연대는 두매리 부근의 전초진지 방어를 전담하게 되었다.
박 이등중사와 연대병력은 1952년 1월 3일 오전 8시 105mm 야포 18문과 155mm 야포 6문, 그리고 4.2″ 박격포 8문이 일제히 포문을 열어 두매리고지 일대를 집중 사격하였고 곧이어 전폭기 4대가 측방 엄호포격을 실시하며 적진을 향해 공격을 개시하였으나 탈환작전은 부진하였고 계속된 돌격로를 개척하면서 적진으로 돌입하여 마침내 중공군을 격파하고 122고지와 148고지를 탈취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고지를 탈환한 후 곧 이은 중공군의 역습을 받아 다시 빼앗기는 과정을 반복하였다. 연대는 2월에 접어든 뒤에도 여전히 대규모 공격작전을 보류했으며 정찰과 기습을 통해 북한군과 계속 접촉을 유지하고 방어진지를 강화하는 데 주력하였다. 다만 아군의 경계선 및 주저항선의 요부에서 소규모 공방이 계속되었다.
7월부터 두 달간은 장마로 인하여 대체로 소강상태가 유지되었다. 부대는 방어진지 보강과 작전지역에 대한 수색 정찰활동에 집중했다. 박만규 이등중사가 소속된 수색대는 수시로 적진에 침투하여 적정을 수집하여 사단에 보고했다. 그는 8월 27일에 소대원들과 함께 적진으로 침투하여 적정수집을 하던 중 적 부대에 발견되어 전투가 벌어졌다. 박만규 이등중사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웠으나, 전투 중 적의 총탄에 가슴을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만규 이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14-ㄱ-05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