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만규(朴萬圭)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9301457
  • 전몰일자 : 19510101

공훈사항

박만규 이등중사는 경상남도 함안군 북원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6·25전쟁이 발발하고 국군이 소백산맥 선까지 철수하면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박 이등중사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다. 그는 1950년 7월경 제3교육대에 입교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수도사단 제18연대에 배치되었다.
박 이등중사가 부대에 배치되었을 때 전황은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과 결전을 벌이고 있었고, 수도사단은 기계 축선에서 적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던 상황이었다. 연대는 8월 3일부터 낙동강방어선의 길안, 청송, 의성, 기계전투에 투입되어 적을 격퇴함으로써 낙동강방어선 돌파 위기를 해소할 수 있었다.
9월 15일 실행된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에 힘입어 연대는 낙동강방어선에서 반격작전을 전개하여 18일에 안강을, 21일에는 기계를 각각 탈환했다. 국군은 공격한계점에 이른 적이 퇴각하자 9월 22일 추격작전으로 전환했다. 박 이등중사와 연대 장병들은 23일 기계 북방의 운주산에서부터 적을 추격하여 청송-춘양-영월-평창-38도선 직후방의 서림리(30일)까지 파죽지세로 진격했다.
10월 1일 38도선을 넘어 북진을 개시한 연대는 10월 4일 간성을 점령한 후, 강원도 원통-양구-회양-신고산-안변 방향으로 우회하여 진격했다. 연대는 10일 원산을 공격하여 점령하고, 11일 시가지에서 저항하는 일부 잔적을 소탕하여 원산을 완전히 확보했다. 연대는 경미한 북한군의 저항을 물리치고 여왕산ᐨ문천ᐨ고원(원산 서북방 35㎞)ᐨ영흥(원산 북방 45㎞)을 계속 점령하여 10월 15일 영흥과 정평(원산 북방 70㎞)의 중간지점인 금진강까지 진격했고, 이후에도 계속 북진하여 10월 17일 함흥을 점령했다. 이후 연대는 장진호, 부전호 방향으로 진격하여 28일까지 개마고원 일대에 다다랐다.
연대는 동해안을 따라 계속 진격하여 25일 청진을 점령하고, 30일 부령까지 진출하여 한·중 국경선을 목전에 두었으나, 이날 중공군의 참전으로 흥남으로 철수했다. 12월 10일 연대는 제3사단과 함께 흥남에서 해상 철수하여 부산에 상륙했고, 25일부로 제3사단으로 예속이 전환되었다.
제3사단은 12월 20일경 홍천으로 이동하여 소양강 변의 관대리 일대에 방어선을 구축했다. 중공군은 12월 31일 전 전선에 걸쳐 제3차 공세를 감행했고, 연대 장병들은 북한군 제2사단의 집중공격에 맞서 분전했으나 진지가 돌파당하자 평창으로 철수했다. 이 전투에서 박 이등중사는 소대원을 이끌고 용감하게 싸우다 1951년 1월 1일 적탄에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만규 이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26-ㄴ-01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