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만개(朴萬開)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60993
  • 전몰일자 : 19511101

공훈사항

박만개 일병은 경상남도 산청군 산청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1년 10월 중순 육군에 입대하였다. 그 시기에 입대하였던 장정들은 기초 군사훈련 과정조차도 제대로 거치지 못하고 전선에 배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박 일병 역시 긴급한 상황에 따라 기초훈련조차도 수료하지 못하고 수도사단 제1연대에 배치되었다.
박만개 일병은 월비산 전투에 투입되었다. 박 일병이 소속된 연대병력은 10월 12일 오전 6시 월비산 공격을 개시하였다. 북한군과 10시간의 격전 끝에 오후 4시경 351고지를 점령한 다음 148고지를 공격하였다. 그러나 전열을 재정비한 북한군이 계속적인 저항을 함에 따라 결국 목표를 점령하지 못하고 351고지로 철수하였다. 추계공세작전에서 월비산을 탈취하고 남강까지 진출하고 있었다. 박 일병이 소속된 연대는 폭우와 강풍이 멎은 모처럼의 청명한 가을 날씨를 맞아 포병과 항공지원을 받으며 공격하였다. 그러나 접근로 상에 배치된 적의 기관총 사격으로 고전하였으나 포병과 박격포 지원사격이 정확히 목표지점에 명중되는 틈을 타 적을 제압하며 고지를 향해 돌진하였다. 박 일병과 연대병력은 201고지-적벽산까지 확보하여 남강 남쪽의 적을 모두 구축하였다.
하나의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뺏고 빼앗기는 쟁탈전을 수차례 반복하였으며 무수한 인명이 희생되는 소모전이 계속되었다. 전투가 반복되면서 북한군과 아군의 시체가 쌓여갔다. 시체가 부패하면서 전투 현장에는 발을 디딜 곳이 없을 정도였다.
그는 전투 경험은 별로 없지만 조국을 우리 손으로 지켜야 한다는 신념만큼은 누구보다 투철하였다. 박 일병은 야간 기습공격 중 북한군을 물리치기 위해 돌진하던 중 바로 눈앞에 북한군의 진지를 앞두고 날아오는 총알을 피하지 못하였다. 최후까지 분전하며 북한군과 맞서 싸웠던 박만개 일병은 1951년 11월 1일 남강 부근 전투에서 북한군이 쏜 총탄을 맞고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만개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21판-7면-260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05-ㅈ-07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