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린서(朴麟緖)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5501497
  • 전몰일자 : 19500816

공훈사항

박린서 하사는 1929년 4월 27일 경기도 포천군 청산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38도선 일대에서 북한군의 도발이 잦았던 시기인 1949년 12월 초순 육군에 입대하여 국군을 건설한다는 자부심으로 훈련과 작전에 임했으며, 기초 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수도사단 기갑연대에 배치되었다.
당시 38도선 일대에서는 북한군의 도발이 계속되고 있었으며, 후방지역에서도 침투한 북한의 무장공비와 국내의 공산주의자들이 연결된 소요사태가 곳곳에서 발생해 혼란이 계속되고 있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6·25전쟁이 발발하자 38도선에 배치된 장병들은 사력을 다해 싸웠지만 T-34전차를 앞세워 공격하는 북한군을 당해 낼 수가 없었다. 당시 국군이 보유하고 있던 대전차무기인 2.36인치 로켓포는 북한군의 T-34전차를 관통할 수 없었다. 개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38도선의 방어선이 대부분 무너지고 말았다.
박린서 하사가 소속된 사단은 모든 부대를 서울 방어에 투입하라는 육군본부의 명령에 따라 의정부 지구 전투에 투입되었다. 그러나 그들 역시 북한군의 전차를 격파할 수 없었다. 북한군은 6월 27일 저녁 미아리 방어선을 돌파하고, 6월 28일 새벽 서울에 진입하였다. 그들은 소부대 단위로 분산된 채 삼송리를 거쳐 행주로 철수해 한강을 도하 하였다. 이어 김포공항을 점령한 북한군 제6사단과 격돌하였다.
박린서 하사와 장병들은 오류동 일대에서 북한군을 저지한 후 7월 3일 한강방어선이 무너지자 지연전 및 재편성을 병행하며 낙동강방어선까지 철수하였다. 북한군 제12사단은 8월 9일-12일 사이에 청송-죽장-기계축선으로 공격하여 기계와 포항을 점령하였다. 박 하사와 장병들은 16일 안강 북쪽 양동리 지역에서 북한군과 공방전을 벌여 기계를 탈환하는데 성공하였다.
박 하사는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삶과 죽음의 감각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북한군과 맞서 싸웠던 박린서 하사는 1950년 8월 16일 안강 부근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린서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02-ㅍ-08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