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룡진(박룡진)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9518577
  • 전몰일자 : 19530627

공훈사항

박룡진 하사는 1932년 12월 16일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6·25전쟁이 발발하고 중공군의 개입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1년 11월 중순 논산에 있는 제2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수도사단 제26연대에 배치되었다.
당시 전선 상황은 1951년 후반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한 고지쟁탈전이 1952년에 접어들면서 더욱 정교해지고, 그 강도는 더욱 높아졌다. 따라서 더욱 많은 사상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공산군 측에 압력을 가하고 미래의 휴전선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더 많은 피를 흘리는 고지쟁탈전을 기꺼이 감수하였다.
박룡진 하사가 소속된 연대는 1952년 7~10월 수도고지와 지형능선전투에 참여하여 북한군과의 공방전에서 북한군을 격퇴했으며 10월 25일 경기도 양주로 이동해 11월 3일부터 9주간 부대정비와 교육훈련을 실시하고 있었다. 박 하사와 연대병력은 강원도 사창리로 이동해 1953년 1월~7월 김화 동북지역의 금성전투에 참여하였다. 북한군은 5월 13일부터 금성돌출부 정면의 전초진지에 대해 공격을 가해 왔으나 박룡진 하사와 장병들은 많은 희생을 감수하고 대부분의 공격을 격퇴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전초는 빼앗기고 말았다. 빼앗겼다가 빼앗음을 수없이 반복하며 장병들은 고지를 지켜내려 혼신의 힘을 다해 싸웠다.
이어 연대는 1953년 5월 14~16일 금성 서남쪽 7㎞ 지점 직목동 일대에 있는 샛별고지(470고지) 전투에서 중공군의 공격을 격퇴하였다. 박 하사와 연대병력은 5월 23~24 금성 서남쪽 4㎞지점에 있는 회고개 전투에서 중공군을 물리쳐 금성 돌출부(김화저격능성-금성 남쪽 중치령.회고개-교암산-지형능선-수도고지-949고지-973고지-833고지를 연하여 형성)일대의 주저항선을 고수하는 전과를 올렸다. 그 결과 사단은 6월 하소리에서 회고개(117번 및 119번 도로 축선)까지 주저항선에 제1연대와 제26연대를 배치하고 제1기갑연대를 예비로 확보할 수 있었다.
그는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삶과 죽음의 감각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히 싸웠던 박룡진 하사는 1953년 6월 27일 김화 부근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룡진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07-ㅂ-05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