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로학(朴魯學)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9200359
  • 전몰일자 : 19500922

공훈사항

박로학 이병은 충청남도 예산군 온양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몰 일자를 고려할 때, 박 이병은 1950년 6월경 입대하여 제8사단 제10연대에 배치되었다. 그가 입대한 후 제8사단 제10연대는 강원도 강릉군 주문진에 주둔하며 강원도 동해안 일대의 방어를 담당하고 있었다.
1950년 6·25전쟁 발발 당시, 제8사단 제10연대는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에 맞섰지만 적의 끊임없는 공세에 대관령과 죽령을 넘어 소백산맥을 따라 경상북도 일대로 지연전을 펼치며 철수하였다.
이후 경상북도 의성 일대의 고지에서 치열한 공방전이 전개되었다. 의성군은 5번 국도와 중앙선 철로가 지나며, 대구와 포항으로 이어지는 교통 및 작전상의 요충지였다. 제8사단 제10연대 장병들은 대구를 점령하려 공격해오는 북한군의 공세에 맞섰으나, 북한군은 포병 중대의 엄호사격에 힘입어 야간에 공격을 개시했고, 결국 제8사단은 진지가 돌파되어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박 이병이 소속된 제8사단 제10연대 장병들은 경상북도 칠곡군 다부동의 전장에 투입되어 방어전의 성공을 거두며, 낙동강 방어선 구축의 일익을 담당하게 되었다.
제10연대 장병들은 경상북도 영천군 보현산 일대의 능선에 주저항선을 설치하여 대구와 포항으로 이어지는 거점을 방어하게 되었다. 이에 북한군 제6사단, 제12사단은 제8사단에 대하여 좌·우측방에서 포위공격을 가했다.
국군 제6사단에서 배속 해제된 제5연대가 제8사단에 배속되어 지원하였으나, 국군의 취약지점에 북한군 제15사단이 추가되어 돌파를 시도한 탓에 악전고투가 불가피하였다. 제10연대는 1950년 9월 10일 오전 3시 40분경 임포동 방면으로부터 영천을 향하여 적 제51연대 일부 병력을 추격하였고, 오전 4시경 제8연대 제1대대는 풍흥동 전방선에서 진출 179고지를 점령하고 계속 북상하였다.
박 이병이 소속된 제10연대는 1950년 9월 10일 오전 10시 30분경 임포 남방에서 적을 공격한 적 전차 4대를 파괴하였다. 이어서 327.5고지 및 반포동 동남방 무명고지에서 적을 공격하여 지대한 전과를 획득하였다. 이 과정에서 박 이병은 1950년 9월 22일 총탄에 맞아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로학 이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유해(36판-1면-20921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58-ㄱ-068)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