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로찬(朴路贊)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9500726
  • 전몰일자 : 19501011

공훈사항

박로찬 이병은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인해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0년 8월 초순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 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소총병으로서 제1사단 제11연대에 배치되었다(출생 일자 및 출생지 미상).
박로찬 이병은 다부동 전투에 투입되었다. 박 이병이 소속된 연대는 8월 12일부터 다부동-군위 일대에서 대구를 방어하게 되었다. 13일 다부동 지역에 집결한 후 새로운 방어선을 점령하기 위하여 연대는 신주막 일대의 계획된 진지로 진출하였다. 이 무렵 북한군 제3사단 일부 병력이 약목 일대에서 도하하여 328고지로 공격하고 북한군 제13사단은 도로를 따라 신주막으로 진출 중인 연대 정면으로 접근하면서 일부 병력을 우회시켜 미쳐 연대가 병력을 배치하지 못한 674고지를 선점하였다.
9월 공세가 시작되자, 박 이병이 소속된 연대는 741고지-팔공산 북방 중앙선까지 담당하여 대구 북쪽의 방어진지 편성에 주력하였다. 대구 북쪽 16km에 위치한 가산(902m)은 중요한 감제고지로서 다부동-대구간 도로와 대구까지도 감제하는 전술적으로 중요한 고지로써 가산을 탈환하여야 하였다. 연대는 기병사단과 협조하여 북한군에게 큰 타격을 주며 9월 14일에는 가산성 가장자리까지 진출하였다.
1950년 9월 16일 아침부터 계속된 비로 예정되었던 공중지원이 취소되었으나 박로찬 이병과 연대병력은 중앙의 계곡 접근로와 동 측방의 군위로 이르는 도로를 이용하여 신속히 북서쪽으로 이동하였다. 이후 9월 25일 낙동리에서 도하를 완료하고 추격 작전의 대열에 들어서게 된 연대병력은 선산-상주-보은을 거쳐 미원으로 진출하면서 낙동강 전선에서 소백산맥의 험한 준령을 따라 북으로 도주를 시도하던 패잔병을 추격하여 퇴로를 차단하고 소탕하였다.
박로찬 이병과 연대병력은 북진 작전을 시작하여 다른 부대에 비해 2일 늦은 10월 11일 38도선을 돌파하였으나 그들보다 먼저 평양을 탈환하여야 한다는 굳은 결의로 뭉쳐 있어 장병들의 사기는 매우 높았다. 위기에 처한 조국을 우리 손으로 지켜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박로찬 이병은 1950년 10월 11일 구화리 부근 전투에서 북한군의 기습을 받고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로찬 이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유해(39묘역-2판-17788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12-ㅍ-02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