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로수(朴魯洙)

  • 군별 : 경찰
  • 계급 : 순경
  • 군번 :
  • 전몰일자 : 19511009

공훈사항

박로수 순경은 1924년 4월 29일 충남 대천읍 대천리에서 출생했다. (경찰 입문 일자 미상). 그는 전몰 당시 충남도경 보령경찰서 소속으로 재직 중 대둔산에서 전사했다.
1950년 6월 28일 서울을 점령하고 7월 4일 한강 방어선을 돌파한 북한군이 파죽지세로 남진하자 보령경찰은 홍성-보령, 보령-청양을 잇는 주요 보급로 경비, 주요 시설 경비, 피난민 이동 통제·구호, 오열 색출 임무를 수행했다.
비상경비총사령부는 7월 11일 제1대대(충남·서울경찰)를 청양에, 제2대대(충남·경기경찰)를 홍산에 배치하여 청양-대천 선에서 군과 함께 북한군의 진격을 저지하는 임무를 부여했다.
보령경찰서가 소속된 제1대대는 청양에 제1중대, 정산에 제2중대, 대천에 제3중대를 배치했으나 예산과 홍성에 적이 침입하여 홍성-대천 지역이 무방비 상태가 되었다. 제1중대는 예산 방면에서 남진 중인 적 유격대를 급습하여 20명을 생포했고, 홍성군 산성면에서는 적과 교전하여 포로 50명, 사살 2명의 전과를 거두었다.
7월 15일 제1대대장은 제1중대 130명을 직접 지휘하여 대천 방향으로 진격하여 집결해 있는 수십 명의 북한군을 포위 급습하여 사살 3명, 포로 2명의 전과를 거두었으며, 이 전투에서 지방 공비 40명을 사살했다. 이후 제1대대는 북한군이 계속 남진하자 곡성-전주-함양을 거쳐 8월 4일 함안에 도달하였으며, 인천상륙작전이 개시되기 전까지 이 지역에서 낙동강 방어선을 지키는데 크게 기여했다.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이 성공적으로 수행되고 9월 16일 국군·유엔군의 반격작전이 개시되자 보령경찰은 10월 2일 보령경찰서를 수복하고 지역 내 치안을 유지하며 잔적소탕작전을 실시했다. 국군·유엔군의 총반격으로 퇴로가 차단된 북한군은 가까운 산지로 들어가 공비들과 합류하여 게릴라 활동을 전개했다. 이에 치안국 비상경비총사령부는 공비섬멸 작전기간(1차: 1951.3.10-4.10, 2차: 1951.4.15-5.5, 3차: 1951.7.15.-8.15)을 설정하여 전국적으로 공비섬멸작전을 시행토록 했다. 보령경찰은 이 기간에 공비섬멸작전을 수행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다.
10월 7일 대둔산에 수십 명의 공비들이 출현하여 양민을 학살하고 가축과 식량을 약탈한다는 정보에 따라 비상경비총사령부는 충남·전북지역의 경찰을 투입하여 공비들을 소탕하도록 했다. 보령경찰은 10월 8일부터 대둔산에 투입되었으며, 10월 9일 정찰 도중 10여 명의 공비들과 조우하면서 교전이 벌어졌다. 이때 박 순경은 공비 1명을 사살하고 계속해서 작전을 수행하다가 적의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로수 순경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5-ㅁ-077)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