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로성(朴魯成)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2804369
  • 전몰일자 : 19500807

공훈사항

박로성 이병은 출생 일자 및 장소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군번과 전사 일자 등을 고려할 때, 그는 1950년 2월 말에 옹진반도의 제17연대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예하 대대로 배치되었다. 당시 연대는 64km의 정면을 담당했으며, 전방에 2개 대대를 배치하고 예비로 1개 대대를 옹진 부근에 집결하고 있었다.
북한군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옹진반도에 전면적인 포격을 실시한 다음에 제6사단 14연대와 제3경비여단을 투입하여 기습적인 공격을 했다. 이에 박로성 이병이 소속된 제17연대는 지연전을 감행하다가 육군본부의 명령에 따라 6월 26일 아침 인천으로 철수했고, 이후 대전으로 이동하여 육본경비임무를 수행하다가 6월 30일 오산과 평택 사이의 갈곶리로 이동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미 지상군 중 최초로 참전한 부대인 스미스특수임무부대는 오산 북방의 죽미령 방어진지에 배치되었으나, 7월 5일에 북한군 제105전차 및 제4보병사단의 공격을 받고 중과부적의 상황에서 방어선이 붕괴되어 철수했다. 이에 박로성 이병이 소속된 제17연대는 방어진지에서 철수 후 보은-상주 지연전에 합류했다.
제17연대는 7월 17일에 북한군 선발대의 전령을 생포한 결과 북한군 제15사단 주력인 45, 48연대가 괴산에서 상주로 연결되는 화령장으로 투입된다는 사실을 알고 도로 양옆으로 매복하여 적의 접근을 기다렸다. 북한군은 7월 18일에 아군의 매복 사실을 전혀 모르고 경계를 소홀히 하며 식사를 했다. 연대 장병들은 때를 놓치지 않고 적들에게 기습적으로 집중사격하여 거의 전멸시키는 전과를 올렸다. 이후 연대는 이곳에서 방어 중 7월 26일에 증강된 북한군의 공격을 받았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용감하게 싸우다가 중상을 입고 부산의 제5육군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8월 7일에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로성 이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유해(43묘역-1판-14570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16-ㅅ-07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