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량옥(朴良玉)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K1121643
  • 전몰일자 : 19530625

공훈사항

박량옥 이등중사는 1923년 4월 6일에 경상남도 함안군 여항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저지하던 1950년 8월 하순, 경남 부산의 육군 제2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카투사로 선발되어 미 제8군으로 배치되었다가 육군의 병력배치조정에 의거 제6사단 수색대로 전속되었다. 사단 수색대는 주로 적진에 투입하여 적정을 수집하여 사단에 보고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박량옥 이등중사가 부대로 전입했던 10월 초순, 제6사단은 10월 5일에 춘천 북방의 모진교에서 38도선을 돌파하여 10월 26일에 선두부대가 압록강까지 진격했다. 이후 두 차례에 걸친 중공군의 기습공격으로 38도선까지 철수하여 동두천 북방의 전곡-백의리 일대에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이곳에서 사단은 12월 31일 야간에 시작된 중공군의 3차 공세(일명 신정공세)로 방어진지에서 철수하여 1951년 1월 6일에 장호원 부근 적산리로 이동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사단은 용문산-가평-화악산-백암산 축선에서 중공군의 2월 공세, 4월 공세, 5월 공세를 격퇴하고 반격하여 6월 중순에는 백암산을 좌우로 잇는 선까지 진출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1951년 7월부터 본격적인 휴전회담이 진행되면서 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되었다. 이 기간에 유엔사는 휴전협상을 촉진하기 위해 방어진지 전방의 주요고지에 대한 공세행동을 하도록 예하부대에 지시했다. 이에 제6사단은 백암산 전방의 819고지와 교암산을 공세행동으로 탈취했다.
이후 제6사단은 1952년 1월 10일에 미 제9군단에서 배속해제 되어 양구로 이동했다가 3월 22일에 미 제9군단에 재배속 되어 김화 부근의 거리실, 원남 일대로 이동하여 봉화산(477고지)-교암산(770고지)을 잇는 방어진지를 점령했다. 이곳에서 제6사단은 6월 12일에 방어진지 전방의 감제고지(금성천 북동쪽 A, B고지)를 공격하여 6월 15일에 탈취했다. 이후 전선은 1953년이 되어서도 소강상태가 계속되었다.
박량옥 이등중사가 소속된 수색소대는 적진에 수시로 침투하여 적정을 수집하여 사단에 보고하고, 때로는 적 지휘소 등 주요시설을 습격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그러던 중 수색소대는 6월 25일에 적진에서 정보수집 활동을 하던 중 적에 발견되어 치열한 전투 끝에 적진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이날 그는 소대선임하사로 용감하게 전투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량옥 이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45-ㅎ-09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