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래호(朴來浩)

  • 군별 : 육군
  • 계급 : 중위
  • 군번 : 202220
  • 전몰일자 : 19510117

공훈사항

박래호 중위는 경기도 안성군 창전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조국과 자유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분연히 일어섰다. 그는 장교가 되고자 육군종합학교에 입교하여 단기간의 교육을 받고, 1950년 10월 5일 소로 임관하여 육본 직할부대에 배치되었다.
육군본부는 후방지역에서의 공비토벌과 보급로 확보, 포로경비 등을 위해 1950년 11월부터 51년 4월까지 14개 경비대대를 창설하였다. 제3경비대대는 1950년 11월 24일 경북 의성 일대의 공비토벌작전을 하던 제6유격대를 개편하여 창설되었다.
한편, 유엔군의 반격작전으로 퇴로가 차단당한 북한군 패잔병들은 후방 산악지대에서 활동하던 지방 게릴라들과 합세하여 점차 전력을 재정비하고, 유엔군의 병참선을 차단하거나 전투근무지원시설들을 습격하였다. 이들은 중공군의 참전으로 전선이 38도선으로 내려오자 전선타격부대와 배합전술을 펼치면서 유엔군의 후방을 더욱 적극적으로 교란하였다. 이에 육군본부는 정규 사단들을 투입하여 게릴라 토벌작전을 전개하였다. 1950년 10월부터 1951년 5월까지 제11사단과 제8사단이 호남지구 토벌작전을, 제2사단이 태백산지구 토벌작전을 각각 실시하였고, 제3경비대대는 제11사단에 배속되어 토벌작전을 하였다.
제11사단은 10월 14일 남원에 도착하여 제9연대를 전남에, 제13연대를 전북에, 제20연대를 지리산지구에 각각 분산 배치하였다. 이후 사단은 1951년 1월 호남지역 게릴라 토벌작전을 전개하였다. 이 토벌작전에서 제3경비대대는 주보급로 및 주요시설 경계임무를 수행하였다.
그는 매사에 적극적이었고 진지에 의지해 웅크리기보다는 앞장서서 적을 공격하는 용맹한 지휘관이었다. 전투경험이 없는 장병들을 지휘하여 최후까지 용맹을 떨쳤던 박래호 중위는 이 작전에서도 소대원을 이끌고 주보급로 경계임무를 수행하다 적 게릴라들의 기습사격을 받고 1951년 1월 17일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래호 중위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충무무공훈장(훈기번호 1847 국)을 추서하고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85-ㅊ-01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