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래혁(朴來赫)

  • 군별 : 육군
  • 계급 : 중위
  • 군번 : 205403
  • 전몰일자 : 19501230

공훈사항

박래혁 중위는 1928년 8월 10일에 충청남도 대전시 원동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저지하던 1950년 8월 중순, 부산 동래의 육군종합학교로 입교하여 소정의 군사훈련과정을 수료한 후 9월 4일에 육군소위로 임관하여 제6사단 공병대대에 배치되었다. 그가 소속된 공병중대는 제7연대를 직접지원했다.
박래혁 중위가 부대로 전입했던 9월 초순, 제6사단 장병들은 낙동강방어선의 신녕 북방에서 북한군의 9월 공세를 저지하고 있었다. 당시 공병부대는 방어 시에는 장애물을 설치하여 적의 기동을 저지하고, 공격 시에는 장애물 개척하여 공격속도를 증가시켰다. 이후 국군과 유엔군은 낙동강 선에서 북한군의 대공세를 격퇴하고 9월 16일부터 반격작전을 전환했다. 제6사단은 함창-문경-충주-원주-춘천 방향으로 반격하여 10월 5일에 38도선을 돌파했다. 계속 김화-금성-신고산-마식령-성천-개천 방향으로 북진하여 10월 24일에 희천에 도착했다.
유엔군은 10월 24일에 압록강을 향한 1차 총공세(일명 추수감사절 공세)를 시작했다. 이에 제6사단은 압록강 변의 초산과 벽동 방향으로 북진하였고, 제7연대 장병들은 10월 26일에 선두부대가 초산을 점령했다. 이때 중공군은 동림산 일대에 숨어 있다가 압록강을 향해 진격하는 아군의 후방을 차단했다. 이에 제6사단 장병들은 10월 27일부터 중공군의 포위망을 돌파해야 했다. 박래혁 중위가 소속된 공병중대도 제7연대 장병들과 함께 포위망을 돌파하면서 130km의 험준한 산길을 따라 10월 31일에 개천에 도착했다.
국군과 유엔군은 11월 24일에 압록강과 두만강을 향한 2차 총공세(일명 ‘크리스마스 공세’)를 시작했다. 이번에도 중공군은 적유령 산맥 일대에 숨어 있다가 10월 25일에 대반격으로 국군의 후방을 차단했다. 이에 국군과 유엔군은 진격을 멈추고 철수를 결심했다. 박래혁 중위가 소속된 공병중대는 12월 초에 북창-시변리-고랑포 지역으로 철수하여 12월 11일에 전곡-백의리 일대의 방어진지를 점령했다.
박래혁 중위가 소속된 공병중대는 방어진지 전방에 철조망 및 지뢰지대 등 장애물을 주도적으로 설치했다. 그가 지휘하는 공병소대는 12월 30일에 방어진지에서 철조망 지대를 보강하기 위해 설치하던 중 적 침투부대의 습격을 받고 치열한 전투 끝에 격멸했다. 이날 그는 용감하게 전투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래혁 중위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47판-6면-227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2-ㅇ-07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