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래윤(朴來允)

  • 군별 : 경찰
  • 계급 : 순경
  • 군번 :
  • 전몰일자 : 19511018

공훈사항

박래윤 순경은 1925년 12월 6일 충북 영동군 영동읍에서 출생했다. 그는 1946년 9월 17일 경찰에 입문했으며, 전몰 당시 충북도경 옥천경찰서 소속으로 재직 중 금산에서 전사했다.
1950년 6월 25일 오전 4시를 기해 북한군이 전 전선에 걸쳐 남침을 개시하자 경찰 비상경비총사령부는 각 도(道) 경찰국이 즉각 전투태세로 전환하도록 지시하고, 군경 합동작전태세에 돌입했다. 옥천경찰은 지역 내 주요시설 경비, 옥천-대전, 옥천-보은, 옥천-영동을 잇는 주요 도로 경비, 피난민 이동 통제·구호, 오열 색출 임무를 수행했다.
북한군이 파죽지세로 남진하여 7월 6일 청주가 함락되자 옥천경찰은 아군 군부대와 병행하여 축차적으로 지연전을 펼치며 후방으로 후퇴했다. 옥천경찰은 영동-김천-성주를 거쳐 7월 23일 고령에 도달하여 인천상륙작전과 국군·유엔군의 반격작전이 개시되기 전까지 이곳에서 낙동강 방어작전에 참여했다. 박 순경은 낙동강 방어작전에서 적 5명을 사살하는 큰 공을 세웠다.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이 성공적으로 수행되고 9월 16일 국군·유엔군의 반격작전이 개시되자 각 도(道) 경찰도 경찰관서 수복작전에 나섰다. 옥천경찰은 9월 26일 옥천경찰서를 수복하고 지역 내 치안유지활동을 강화하며 잔적소탕작전을 전개했다.
국군·유엔군의 총반격으로 퇴로가 차단된 북한군은 가까운 산지로 들어가 공비들과 합류하여 게릴라 활동을 전개했다. 이에 치안국 비상경비총사령부는 공비섬멸 작전기간(1차: 1951.3.10-4.10, 2차: 1951.4.15-5.5, 3차: 1951.7.15.-8.15)을 설정하여 전국적으로 공비섬멸작전을 시행토록 했다. 박 순경은 제1차-제3차 공비섬멸작전에 참가하여 공비 수 명을 사살하는 큰 공을 세웠다.
이 작전 후 박 순경은 옥천경찰서에 복귀하여 치안유지활동과 공비소탕작전을 수행했다. 1951년 10월 18일 금산에 공비들이 출현하자 금산·영동·옥천·대전경찰이 출동하였고, 경찰병력이 도착하자 곧바로 쌍방 간 교전이 벌어졌다. 박 순경은 공비 2명을 사살하고 계속 전투 중 적의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래윤 순경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유해(경찰2묘역-507판-548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으며,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5-ㄷ-041)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