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래원(朴來元)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8200285
  • 전몰일자 : 19510508

공훈사항

박래원 하사는 1930년 2월 15일 충청남도 대덕군 유천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신생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고 조국에 헌신하고자 1950년 2월 초순 육군에 입대하여 국군을 건설한다는 자부심으로 훈련과 작전에 임하였으며,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사단 제12연대에 배치되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박래원 하사는 38선 진격전에 투입되어 10월 9일 연대병력과 함께 38도선을 돌파하였다. 박 하사와 장병들은 조국 통일의 꿈을 안고 임진강-토산-신계-수안-상원 방향으로 진격을 계속하여 10월 19일 평양에 최선두로 입성하는 수훈을 세웠다. 박 하사와 연대병력이 압록강을 향해 진격하고 있을 때 예상치 못하였던 중공군의 기습공격이 시작되었다. 국군과 유엔군은 다시 38도선으로 철수하였다. 그와 장병들은 사력을 다해 38도선을 지켜내려 하였다. 그러나 1950년 12월 31일 시작된 중공군의 제3차 공세는 중과부적이었다. 파평산에서 철수한 박 하사와 연대 장병들은 서울을 포기하고 평택까지 철수하였다.
박래원 하사와 연대병력은 1951년 1월 말 유엔군과 함께 반격을 시작하였다. 수원과 관악산을 거쳐 2월 10일 한강 남쪽에 도달하였고, 16일에는 한강 남쪽으로 진출한 이후 한 달여 동안 서울을 목전에 두고 염창-김포 일대에 배치되어 경계와 잔적 소탕작전을 병행하고 있었다. 이어 3월 15일에는 한강을 도하 하여 시내로 진출함으로써 서울을 탈환하는 수훈을 세웠으며, 4월에는 다시 임진강까지 진출하였다. 양측은 서부전선에서 대규모 공세를 자제하였지만 신경전과 소규모전투는 더욱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박 하사와 연대병력은 4월 28일 북한군 제8사단과 금촌, 동거리 일대에서 지연작전을 전개하여 적에게 큰 타격을 주었으나 전선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하여 서울 외곽으로 철수하였으며, 29일에는 화전리 일대에 방어진지를 점령하였다.
그는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삶과 죽음의 감각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위기에 처한 조국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최후까지 용감하게 북한군과 맞서 싸운 박래원 하사는 1951년 5월 8일 화성 부근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래원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유해(장병1묘역-104판-3478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13-ㅍ-06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