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래영(朴來映)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0627068
  • 전몰일자 : 19530613

공훈사항

박래영 일등중사는 1930년 9월 8일 전라북도 익산군 삼선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일어섰다. 박 일등중사는 1951년 7월경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7사단 제8연대에 배치되었다.
박 일등중사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38도선 상의 유리한 방어지역인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과 그 북방의 신 캔자스선(화천저수지-펀치볼-향로봉-간성을 잇는 선) 일대에서 중공군 및 북한군과 공방전을 전개하고 있었고, 제7사단은 양구군 백석산 남방에서 적과 대치 중인 상황이었다.
중공군 5월 공세 이후 중공군과 유엔군은 피아간에 군사작전으로는 전쟁에서 승리하기 어렵다는 판단하에 휴전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7월 10일 최초로 양측 대표가 휴전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따라서 이후의 전투양상은 휴전협상에서의 설전과 더불어 유리한 위치를 점유하기 위한 고지쟁탈전으로 진행되었다.
미 제2사단이 9월 13일부터 단장의 능선 확보를 위해 공격을 감행했으나, 적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답보상태에 이르자 미 제10군단장은 이를 타개하기 위해 제7사단에게 단장의 능선 서측방에 있는 백석산을 탈취하도록 명령했다. 이에 사단은 9월 24일 백석산을 목표로 공격을 개시했고, 연대는 백석산 동측의 894고지를 점령했다. 연대는 26일 백석산 주봉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으나, 북한군 제32사단, 제12사단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끝내 고지 탈취에 실패하고 28일 동 임무를 제8사단에 인계 후 양구로 이동하여 부대정비를 했다.
사단은 11월 20일 다시 미 제10군단에 배속되어 백석산 북방의 1,090고지~931고지~암동~319고지를 있는 제8사단의 전선을 인수했다. 이곳에서 사단은 1,090고지 전방의 전초진지인 크리스마스고지에서 중공군 제68군 예하 제204·202사단의 3차에 걸친 공격(1차 : 1951. 12. 25~28, 제2차 : 1952. 2. 11~13, 3차 : 1952. 10. 6~14)을 막아내며 이 고지를 지켜냈다.
사단은 1953년 5월 18일 제20사단에 전선을 인계하고, 미 제10군단 예비로 전환되어 현리 일대에서 부대정비 및 교육훈련을 하면서 후방지역작전을 했다. 박 일등중사는 1953년 6월 13일 소대원을 이끌고 매복작전 중 적의 기습으로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래영 일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54-ㅈ-06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