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래선(朴來善)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상사
  • 군번 : 1302692
  • 전몰일자 : 19500628

공훈사항

박래선 이등상사는 전라북도 무주군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1948년 2월 6일에 전북 이리의 제3연대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연대 통신대로 배치되었고, 서울 영등포에 설치된 통신학교에서 주특기 교육을 수료함으로써 통신하사관으로서 전문지식과 기술을 취득했다. 이후 그는 동년 12월 1일부로 충남 대전에서 제2여단이 창설될 때에 여단 통신대로 전속되었다.
제2여단은 1949년 5월 12일부로 여단에서 사단으로 승격되었고, 동년 11월 5일에 안동지역으로 이동하여 태백산 지구에서 활동하는 공비소탕작전을 완료하고 1950년 4월 14일에 충남 대전으로 이동했다. 박래선 이등상사가 소속된 통신소대는 잦은 공비소탕작전을 실시할 때에 적극적으로 통신 지원을 했다.
국군은 1950년 6월 25일에 전 전선에 걸쳐 북한군의 기습공격을 받았다. 군사력에서 열세하고 방어준비태세도 미흡했던 국군은 북한군의 공격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방어체계는 붕괴되었다. 이에 육군총참모장은 후방의 사단들을 전방방어지역으로 증원토록 조치했다. 제2사단은 신속히 의정부 지역으로 이동하여 제7사단을 증원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에 사단은 우선 이동이 가능한 제5연대를 투입했다.
박래선 이등상사가 소속된 통신대는 통신 지원을 위해 부대원들과 함께 제5연대를 따라 의정부로 이동했다. 부대는 6월 25일 대전에서 기차로 출발하여 저녁 8시에 의정부 북방의 금오리에 도착했으며, 도착 즉시 축성령에 배치된 제3연대를 초월하는 반격작전을 위해 이동했다. 그러나 제5연대가 축성령에 도달했을 때, 배치되어 있다는 제3연대는 없고 이미 북한군이 점령하고 있었다. 이에 그가 소속된 통신대는 6월 26일 새벽까지 통신 지원을 위해 동분서주했으나, 이미 북한군이 점령한 지역에서 제5연대 장병들과 함께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미아리방어선에 배치되었다.
제5연대 장병들은 미아리에서 미아리지구전투사령관으로 임명된 제5사단장 이응준 소장의 지시를 받아 적에 대항하여 전투를 벌였으나, 큰 효과를 거둘 수는 없었다. 이어 6월 28일 새벽에 한강을 도하하여 신사리-동작리 일대에 배치되었다. 박래선 이등상사가 소속된 통신대는 늦게 올라온 사단본부와 합류하였다. 이곳에서 그는 사단과 예하 연대 간에 통신 지원을 위해 동분서주하다가 적의 침투부대로부터 공격을 받고 전투 중 적의 총탄에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래선 이등상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9판-1면-014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16-ㄷ-04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