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래권(朴來權)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31827
  • 전몰일자 : 19530201

공훈사항

박래권 일병은 경상남도 양산군 웅상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6·25전쟁 발발 이후 유엔군이 적의 공격을 물리치고 반격작전으로 전환하자, 그는 조국통일에 앞장서겠다는 일념으로 일어섰다. 박 일병은 1950년 10월 중순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5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7사단 제5연대에 배치되었다.
박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의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추격작전을 실시 중이었고, 제7사단도 적을 추격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10월 29일 제2군단으로 배속 전환된 사단은 개천 동쪽의 비호산 일대에서 11월 3일부터 7일까지 중공군 제38군단과 혈전을 벌인 끝에 적을 격퇴함으로써 중공군과의 전투에서 최초로 승리하는 부대가 되었다. 연대는 11월 22일 묘향산으로 공격을 개시했으나, 중공군 제38, 42군단의 강력한 반격을 받고 악전고투 끝에 27일 순천 일대로 철수했다. 연대는 승호리-신계-시변리-연천을 거쳐 12월 15일 춘천으로 단계적으로 철수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연대는 1950년 12월 31일 시작된 중공군 제3차 공세 때부터 1951년 5월의 중공군 제5차 공세 때까지 중동부 축선의 인제-하진부리-평창-영월 선을 오르내리며 적과 치열한 공방전을 전개했다. 유엔군은 5월 말 공세로 전환했다. 이때 연대는 6월 7일부터 12일까지 양구 서북방의 군량현 일대에서 적과 치열한 교전 끝에 ‘신 캔자스선’ 상의 마석봉-504고지-757고지를 잇는 선을 확보했다. 연대는 8, 9월 동안 양구군 백석산과 그 남쪽의 917고지 일대에서 치열한 공방전을 펼쳤으나, 북한군 제32사단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끝내 백석산 탈취에 실패했다.
사단은 11월 20일 다시 미 제10군단에 배속되어 양구군 백석산 북방의 1,090고지~931고지~암동~319고지를 있는 제8사단의 전선을 인수했다. 연대는 1,090고지 전방의 전초진지(크리스마스고지)에 대한 중공군의 3차례에 걸친 공격을 격퇴하며 동 고지를 지켜냈다.(제1차 크리스마스고지전투 : 1951. 12. 25~28, 제2차 : 1952. 2. 11~13, 제3차 : 1952. 10. 13~14.)
사단은 11월 15일 미 제25사단에 현 전선을 인계하고 양구로 이동하여 부대정비와 교육훈련을 실시한 후, 1953년 2월 1일 다시 미 제25사단의 전선을 인수했다. 이날 적 소규모 부대가 침투 공격을 하자, 박 일병은 앞장서서 용감하게 싸우다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래권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12판-4면-244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54-ㅅ-04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