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득현(朴得鉉)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501350
  • 전몰일자 : 19510511

공훈사항

박득현 하사는 경상북도 영천군 영천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격퇴하고 반격을 준비하던 1950년 9월 14일, 경남 삼랑진의 육군 제6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1사단 직할부대인 수색중대로 배치되었다.
제11사단은 8월 27일 영천에서 창설했으며, 예하 연대는 지리산을 중심으로 제9연대가 경남에, 제13연대가 전북에, 제20연대가 전남 지역에 각각 분산 배치되었다. 박득현 하사가 소속된 수색중대는 사단 본부와 함께 육본 명령에 의거 10월 10일에 대구를 출발하여 14일에 남원에 도착했다.
사단은 1951년에 접어들면서 게릴라들의 강력한 저항에 맞서 근거지 파괴와 지도 인물 체포를 통해 게릴라의 재집결을 봉쇄하는데 중점을 두고 작전을 전개했다. 박득현 하사는 그가 소속된 수색소대로 함께 제9연대로 파견을 나가 3월 17일에 화학산 일대에서 많은 적 게릴라를 사살하고, 3월 22일에는 순천을 습격한 게릴라들과 교전을 벌여 많은 전과를 올리기도 했다. 이후 공비들의 세력 단위 활동은 소멸되었으나, 소규모 활동은 이어 갔다.
사단은 공비토벌작전 임무를 4월 6일에 국군 제8사단에 인계 완료하고, 4월 중순에 동해안 양양으로 이동하여 국군 제1군단에 배속되었다. 사단은 4월 22일부터 시작된 공산군의 4월 공세시에 속초-간성 일대에서 철수하여 양양 북방의 대포리를 연하는 선에서 저지했다. 이후 5월 7일부터 인접부대인 수도사단과 함께 반격하여 5월 11일에 마등령-저항령-989고지를 연하는 선까지 진출했다.
사단 수색중대는 항상 적진 깊숙이 침투하여 적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고, 또한 적 지휘소 등을 습격하여 적 후방을 교란했다. 그러던 중 박득현 하사가 소속된 수색소대는 5월 11일에 적진에 침투하여 989고지 후방의 적 지휘소를 습격한 후 퇴각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퇴각할 때에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득현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4판-7면-191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73-ㅂ-03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