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득록(朴得祿)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0687090
  • 전몰일자 : 19530715

공훈사항

박득록 이등중사는 1926년 4월 27일에 강원도 강릉군 방곡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휴전협상이 시작되던 1951년 11월 초순,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6사단 제19연대에 배치되었다.
박득록 이등중사가 부대로 전입했던 12월 중순, 제6사단은 몇 번의 공세 행동을 실시하여 백암산 전방의 교암산-송설리-송동리까지 진출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하고 있었다. 그가 전입하기 전, 공산군이 휴전협상을 지연하면서 군사력 증강에만 몰두하자, 유엔사는 휴전협상을 촉진하기 위해 각 부대에 공세행동을 명령했다. 이에 제6사단은 공산군의 공격 능력을 분쇄하고 휴전협상을 촉진하기 위해 10월 13일부터 10월 21일까지 공격하여 정면의 중공군을 격파하고, 금성천 분지를 확보했다.
제6사단은 1952년이 되면서 전선의 소강상태가 계속되자 연대별로 전방과 예비로 몇 번의 부대 교대를 했다. 박득록 이등중사가 소속된 제19연대는 사단 예비로 활동하다가 5월 22일에 교암산과 전초기지인 575고지를 제7연대로부터 인수했다. 중공군은 제19연대의 전초기지가 된 575고지를 눈엣가시처럼 생각하고, 5월 31일과 6월 14일에 두 차례나 공격하여 탈취했으나, 그때마다 제19연대 장병들은 역습으로 되찾았다. 이후 연대는 다시 사단 예비가 되어 노동리 일대에 위치하다가 10월 5일부로 제2연대로부터 방어진지를 인수했다. 10월 9일에 중공군으로부터 금성 부근의 주요고지를 공격받았으나 격퇴했다.
이후 전선은 1953년이 되면서 소강상태가 계속되었으며, 사단은 5월까지 3개 연대가 교대를 하면서 근무하도록 했다. 박득록 이등중사가 소속된 제19연대는 5월 17일부터 사단의 우측인 교암산 방어진지를 인수했다. 한편 중공군은 휴전협정 체결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금성천 분지를 감제하는 교암산 지역을 탈취하기로 하고, 7월 10일에 대대적인 공격을 했다. 일명 금성지구전투가 시작되었다. 이에 제19연대는 큰 피해를 받고 7월 14일에 교암산에서 적근산-주파령을 잇는 선으로 철수했다. 중공군의 공격은 적근산-주파령 방어진지에 대해서도 7월 16일까지 계속되었다. 이곳에서 사단 장병들은 강력한 저항으로 적의 공격을 격퇴했다. 그는 7월 15일 전투에서 용감하게 싸우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득록 이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6판-3면-070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6-ㅁ-01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