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득규(朴得圭)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40761
  • 전몰일자 : 19510517

공훈사항

박득규 일병은 경상북도 칠곡군 인동면(現 구미시 인동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후 국군과 유엔군이 압록강 및 두만강으로 진격작전을 진행 중이던, 1950년 10월 하순경 입대하여, 제주도에 위치한 제5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5사단 제35연대로 배치되었다.
박득규 일병이 부대에 재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두 차례에 걸친 중공군의 기습적인 공격으로 다시 38도선으로 후퇴하던 상황이었다. 제5사단은 12월 5일경 17번 국도상의 춘천 지역에 배치되어 평양-서울 간 도로의 동측방에 대한 엄호작전 후, 13일부로 춘천 북방 38도선 일대 전선 방어(탑두울-배후령)에 투입되었다. 당시 박득규 일병이 소속된 제35연대는 북한강 서쪽의 송암리 일대에 배치되었다.
마침내 중공군은 1951년 1월 1일 새벽에 공격(제3차 공세·신정공세)을 개시하여 아군의 후방을 차단했다. 사단은 적의 압도적인 공격에 밀려 가평-횡성-여주-영주 일대로 철수하였으며, 영주 지역에 침투한 북한군 제2군단 예하 부대들을 격멸했다. 사단은 다시 전방지역에 투입되어 2월 5일부로 홍천 포위공격을 개시하여 목표 점령을 앞둔 2월 10일에 중공군의 2월 공세를 위한 대규모 기동을 확인하고 야간 방어로 전환했다. 마침내 사단은 2월 12일 아침 중공군의 집중적인 공격(일명 2월 공세)을 받고 철수를 개시하여 제천 북쪽 주천리 일대에 新방어진지를 점령했다.
중공군의 2월 공세 이후 사단은 횡성 일대의 봉복산-태기산 전투(3월), 인제 부근 전투(4월)에서 적을 격퇴하며 중공군 춘계 공세를 막아냈다. 이후 사단은 4월 10일에 인제 방면 장평-봉화봉을 잇는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를 목표로 공격을 개시하여 4월 19일 캔자스선을 점령했다. 그 후 사단은 5월 7일 美 제10군단에 배속되어 한석산 좌측에서 소양강 남쪽의 부평리-청구리 일대를 목표로 공격하여 홍천-인제 도로를 확보했다. 제35연대는 사단예비로서 주공연대를 후속하다가 부평리-청구리 일대의 목표를 공격하여 탈취했다.
그러나 사단은 진지강화 및 재편성 중에 5월 16일부터 19일까지 중공군의 공격(일명 5월 공세)을 받았다. 이 전투에서 사단은 포위되어 위기를 맞았으나 격전을 치르면서 포위망을 탈출하여 5월 20일 홍천 부근 풍암리 일대에 새로운 방어진지를 구축했다. 이와 같은 중공군 5월 공세로 박득규 일병은 5월 17일 부평리 일대에서 분대원과 함께 적과 교전 중 적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득규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16판-4면-155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2-ㅊ-089)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