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두희(朴斗熙)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K1123410
  • 전몰일자 : 19501105

공훈사항

박두희 일병은 1921년 7월 25일에 경상남도 김해군 김해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저지하던 1950년 8월 중순, 경남 부산의 육군 제2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카투사(KATUSA) 병으로 분류되어 미 제1기병사단에 배치되었다.
박두희 일병이 부대에 전입했을 때인 9월 중순, 미 제1기병사단은 반격작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유엔군은 9월 16일부로 총반격작전을 실시하여 인천상륙작전부대와 연결하여 북한군을 격멸하고자 했다. 한편 북한군은 인천상륙작전으로 그들의 후방이 차단된 것을 아직 모르고 낙동강 선에서 방어진지를 구축하여 완강하게 저항했다. 그러나 9월 20일부터 적들은 진지를 이탈하여 도망가기 시작했고, 사단은 도망가는 적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그가 소속된 제5연대는 낙동리에서 도하하여 상주-청주-천안 방향으로 추격하여 26일에 오산 북방에서 인천상륙작전 부대인 미 제7사단 장병들과 합류했다.
박두희 일병이 소속된 미 제1기병사단은 10월 8일에 임진강을 도하하여 개성-금천-사리원-평양 방향으로 적을 추격하여 10월 19일에 평양을 점령했다. 이후 사단은 미 제8군의 예비로서 평양에 머무르며 잔적 소탕작전을 실시했다. 그러던 중 10월 26일에 중공군은 온정리를 점령하여 국군 제6·제7사단의 후방을 차단하고 계속 전진하여 유엔군의 후방을 교란하고자 했다. 이에 미 제1기병사단은 11월 4일에 온정리로 긴급히 투입되어 11월 5일까지 중공군의 공격을 격퇴하여 국군 사단들은 다시 안정을 되찾았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미군장병들과 함께 용감하게 싸우다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두희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41판-3면-166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90-ㅂ-01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