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두환(朴斗煥)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상사
  • 군번 : 5701194
  • 전몰일자 : 19500625

공훈사항

박두환 일등상사는 1924년 2월 26일에 충청북도 제천군 제천면에서 출생했다. 대한민국 정부가 1948년에 수립되었으나, 북한공산세력의 침투로 매우 혼란스러운 가운데, 그는 군 입대를 결심하고 1948년 6월 27일에 서울 용산의 제2훈련학교로 입대하여 포병 및 야포교육을 8월 8일에 수료한 후 제7포병대대로 배치되었다. 이후 포병대대는 1949년 11월 15일에 옹진반도로 투입될 때에 연대에 배속되어 옹진반도로 이동했다.
제17연대는 서울 용산에서 1949년 11월 15일에 옹진반도로 이동하여 옹진지구전투사령부에 예속되었고, 옹진반도는 제17연대와 제18연대가 방어하게 되었다. 이후 이곳에서 북한군의 도발이 잠잠해지자, 국군은 1950년 3월 1일부로 옹진지구전투사령부를 해체하고, 좌측에서 방어하던 제18연대를 옹진반도에서 철수시켜 수도경비사령부 예하로 복귀시켰다. 이로써 옹진반도에는 제17연대만 남게 되었는데, 연대는 64km의 정면을 담당했으며, 전방에 2개 대대를 배치하고 예비로 1개 대대를 옹진 부근에 집결하고 있었다.
북한군(제6사단 1연대와 제3경비여단)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에 포격과 동시에 전면 남침을 시작하여 아군의 전방대대 방어진지를 양익 포위하려 했다. 제17연대는 적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싸웠으나, 전투력의 열세와 지형의 불리한 조건으로 오전 7시에 옹진 정면이 위급하게 되자 예비대인 제2대대를 투입했다. 박두환 일등상사가 소속된 포병대대는 최대한 화력을 제공하고자 했으나 정면이 넓어 포대별로 분산되어 있어 화력을 집중하지 못했다. 북한군은 대대 간의 전투지경선인 취야-양원, 취야-강령 국도를 향해 공격함으로써 아군 방어지역은 오후 1시부터 동서로 양분되고 말았다.
박두환 일등상사가 소속된 포병대대는 화력을 지원하면서 강령으로 철수하라는 연대의 명령을 접수하고 철수를 단행하여 밤 11시 반에 강령을 거쳐 부포항에 도착했다. 포병은 보병부대의 병력과 장비가 해군 LST함정에 승선하는 동안 적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화력지원을 실시했다. 당시 박두환 일등상사는 적극적으로 포대를 지휘하며 화력을 지원하였으나 적들의 포병은 더욱 강력하였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적의 포격에 맞아 전사했다. 이후 적들은 26일 아침이 밝아오자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후 포병부대는 야포를 파기하고 인천으로 철수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두환 일등상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16-ㅈ-01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