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두홍(朴斗弘)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47769
  • 전몰일자 : 19500914

공훈사항

박두홍 일병은 부산시 영도구 봉래동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인해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0년 9월 14일 육군에 입대하였다. 그 시기에 입대하였던 장정들은 기초 군사훈련 과정조차도 제대로 거치지 못하고 전선에 배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박 일병 역시 워낙 긴급한 상황에 따라 기초훈련조차도 수료하지 못하고 수도사단에 배치되었다.
박두홍 일병이 전선에 배치될 당시 수도사단은 북한군 제12사단이 청송-죽장-기계-안강 축선으로 침공하여 포항을 점령하자, 동해안의 기지와 월포 부근에 위치한 국군 제3사단을 해상으로 철수시키는 한편, 수도사단과 독립 제17연대 그리고 미 브래드릭 특수임무부대를 투입하여 역포위작전을 전개한 끝에 이들을 비학산 방면으로 격퇴하였다.
그러나 당시 북한군 제5사단과 제12사단이 기습공격을 감행하여 포항과 경주 지역으로 진출하게 되자 미 제8군에서 증원된 잭슨 특수임무부대와 함께 형산강 일대에서 이들의 침공을 저지한 후, 반격작전을 전개하여 기계와 흥해 지역으로 진출하였다.
이 전투로 북한군 2개 사단은 낙동강 전선의 동부지역 돌파 작전에 실패하게 되었고, 수도사단은 기계와 포항 지역 북방으로 철수한 북한군을 추격하여 다음 단계의 반격작전으로 이행하게 되었다.
박두홍 일병과 같이 입대한 신병들이 전투에 투입되어 하룻밤을 넘기지 못하고 전사하는 사례도 허다하였다. 군번은 고사하고 부대원 명부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한 상태에서 중대장은 물론 소대장이나 분대장이 소속대원의 이름을 익히기도 전에 전사하는 경우도 많았다. 박 일병은 위험을 마다하지 않고 앞장서서 전투에 임하였다. 그는 전투경험이 많지 않은 신병에 불과했지만 조국을 우리 손으로 지켜야 한다는 신념만큼은 누구보다 투철하였다. 박두홍 일병은 치열한 공방전을 전개하며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으나 1950년 9월 14일 안강전투에서 북한군이 쏜 총탄을 맞고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두홍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20판-3면-133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03-ㄲ-03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