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두하(朴斗河)

  • 군별 : 경찰
  • 계급 : 경사
  • 군번 :
  • 전몰일자 : 19500709

공훈사항

박두하 경사는 1926년 2월 18일 경북 봉화군 소천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1950년 1월 15일 경찰에 입문했으며, 전몰 당시 경북도경 특경대 소속으로 재직 중 봉화에서 전사했다.
제주 4·3사건(1948년)과 이듬해 여·순 사건으로 인하여 안보적으로 매우 어수선한 상황에서 지방공비 세력이 증가하자 정부는 군·경 합동으로 대대적인 공비토벌작전을 단행하기로 했다. 토벌작전은 3단계(제1단계: 1949.10.30-11.30, 제2단계: 12.1-12.15, 제3단계: 49.12.16-1950.2.28)로 시행했으며, 박 경사는 제3단계 기간에 참여하여 대대적인 포위 및 수색작전으로 많은 전과를 올렸다.
1950년 6월 25일 오전 4시를 기해 북한군이 전 전선에 걸쳐 남침을 개시하자 경찰 비상경비총사령부는 각 도(道) 경찰국이 즉각 전투태세로 전환하도록 지시하고, 군경 합동작전태세에 돌입했다.
북한군 제5사단은 아군의 정면을 공격하고, 유격부대인 제766부대와 육전대인 제549부대는 아군의 후방지역 해안으로 상륙하여 제10연대와 제21연대를 차단, 각개격파를 기도했다.
6월 25일 동해안 삼척지구에 해상으로 침투한 북한군 제766유격부대는 강릉지구의 군경부대가 철수하자 6월 29일 죽변에 상륙했다. 그 중 2개 중대가 6월 30일 울진 전방에 진출하였으며, 경찰부대는 지연전을 펼치며 적의 전진을 저지했다.
경북도경 특경대는 정보수집, 적 부대 기습 타격, 주보급로 경비 등의 임무를 수행했다. 동부지역의 적 766유격대는 7월 5일 경북 북부지역 봉화군 일대에 출현하여 아군의 후방을 위협했다. 또한 이 무렵 경남 서부지역과 호남지역에 2-10명의 소규모 공비들이 출몰하여 시간이 지날수록 그 수와 횟수가 증가했다.
북한군의 남진이 계속되고 전선이 남쪽으로 이동됨에 따라 박 경사가 포함된 경북특경대 50명, 경찰 300명, 재편성부대 200명이 1개 대대로 편성되어 봉화에서 준동하는 적 유격대를 공격하고자 했다. 7월 8일부터 경북특경대는 적 유격대의 은거지를 탐색하기 시작했는데 박 경사가 이끄는 정찰팀이 봉화 춘양에서 가장 먼저 적의 은거지를 발견했다. 정찰팀은 곧바로 관련 정보를 상부에 보고함과 동시에 적을 공격했다. 전투는 다음 날까지 이어졌으며 박 경사는 휘하의 병력을 지휘하여 적을 격퇴하다가 적의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두하 경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6-ㄱ-015)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