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두원(朴斗元)

  • 군별 : 공군
  • 계급 : 대위
  • 군번 : 50945
  • 전몰일자 : 19520802

공훈사항

박두원 대위는 1926년 7월 5일에 경상북도 포항시에서 출생했다. 그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혼란스러웠던 1949년 6월 10일, 김포비행장 내에 설치된 항공사관학교에 제1기 사관후보생으로 입교하여 본격적으로 군 간부요원의 교육을 받았다. 항공사관학교는 1949년 10월 1일 공군이 육군으로부터 독립된 것과 때를 같이하여 공군사관학교로 개칭되었다.
북한군이 1950년 6월 25일에 전면적인 침략을 했을 때, 박두원 대위가 포함된 항공사관 제1기생들은 진해비행단 소속으로 미 제5공군 교육반에서 F-51, L-4의 지상교육을 받았다. 이후 공군은 7월 2일부로 미군으로부터 F-51무스탕 전투기를 지원 받아 지상작전을 지원했다. 이 최초의 전투기는 공군사관학교 제1기생이 주축이 되어 훈련받아 운용했다.
한국 공군은 1951년 9월, 전투가 38도선 부근에서 치열하게 전개되면서 주전력을 사천 기지에서 강릉 기지로 옮겨 동부 전선에서 작전 중인 국군을 근접지원하기로 결정하고 제10전투비행단을 창설했다. 박두원 대위는 예하 제11전투비행대대 소속으로 함께 이동했다. 1951년 10월 11일 새벽, 드디어 첫 출격하여 중공군 제68야전군과 북한군 제2군단의 후방 보급로를 강타하여 적의 보급을 끊는 임무를 수행했다. 이후 1952년이 되어서도 연일 출격하여 철도와 철교, 보급품 저장소, 군용 건물 등을 타격함으로써 적에게 막대한 피해를 주었다. 점차 대원들의 기량도 향상되어 가고 있었다.
한편, 국군 제5사단은 1952년 7월 10일부터 11월 10일까지 동부전선 고성 북방의 351고지 일대에서 북한군 제9사단과 치열한 고지쟁탈전을 실시했다. 당시 박두원 대위는 1952년 8월 2일에 편대원들과 함께 351고지 전투를 지원하기 위해 빗발치는 적의 대공포화를 뚫고 과감하고 거침없이 목표를 타격했다. 편대원들은 60도 이상의 급강하로 목표에 부딪힐 정도로 접근해 공습하고는 다시 기수를 올려 수직으로 고속 상승하는 등 필사적으로 전투기를 기동시키면서 적을 공격했다. 그러던 중 그는 8월 2일에도 출격하여 적 방어진지와 후방의 보급기지를 공습했다. 이날 그는 적진을 공격하던 중 적의 대공포화에 맞아 강릉 상공에서 애기와 함께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두원 대위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유해(17묘역-8판–066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91-ㅋ-05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