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두용(朴斗用)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29524
  • 전몰일자 : 19500920

공훈사항

박두용 일병은 경상남도 거제시 둔덕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몰 일자를 고려할 때, 박 일병은 1950년 2월경 입대 후 제8사단 직할부대에 배치되었다. 박 일병의 부대 전입 당시 제8사단은 단양, 제천, 영월 등 총 8개 군 지역에서 북한의 무장유격대 토벌 작전을 전개하였다.
그 결과 1950년 4월 22일까지 시행되었던 공비토벌작전은 북한유격대와 공비들을 전부 소탕하는 성과를 거두며 토벌 작전을 마친 제8사단은 강원도 강릉으로 이동하여 경계 작전을 수행하고 있었다. 북한군은 1950년 6월 25일 이른 새벽 38도선을 지나 국군의 기지를 공격하며 기습남침을 감행하였다. 국군은 방어와 함께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적극적으로 역습을 시도해 적에게 피해를 줬으나 적의 병력과 화력이 우세해 강릉을 상실하고 지연전을 펼치며 후퇴했다.
제8사단 장병들은 1950년 8월 1일 북한군 제12사단이 공격을 위해 안동으로 집결하는 것을 확인했다. 이에 제8사단은 제50포병대대의 지원을 받아 안동 북쪽의 천등산과 연곡동 일대에서 북한군의 진격을 저지했다. 북한군은 1950년 8월 20일 기계, 안강 일대를 위협하였고 제8사단이 위치한 영천 북방에 강력한 압력을 가했다. 이후 북한군은 1950년 8월 25일 보현산 북방 도처에 침입을 개시하였고, 그곳엔 제8사단과 각 연대를 비롯한 아군 또한 방어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이에 제8사단은 항공기로 대대적인 폭격을 가하며 북한군의 주저항선 및 방어진지를 분산시키며 그들의 남진을 저지하였다. 제8사단은 주저항선에서 북한군을 끊임없이 저지하였지만 1950년 9월 4일, 계속되는 압력에 지휘소를 선천동으로 이동하여 철수하였다. 제8사단은 1950년 9월 10일부터 13일까지 낙동강 교두보상의 보현산 부근에서 북한군과 고지 선점을 위한 치열한 공방전을 전개했다. 경상북도 영천군의 보현산 부근의 전투는 피아간에 많은 사상자를 낳았다.
제8사단 사령부를 금호로 이동시키고 영노동, 작산동 선에 위치한 적의 포위망을 돌파하며 격퇴함에 따라 고지를 확보하여 9월 13일에 영천군을 재탈환하였다. 영천 재탈환 후 제8사단은 국군 총반격 작전에 합류해 보현산 초고령 일대에 배치되어 있는 적을 격파하고 북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박 일병은 1950년 9월 20일 전투 중 적의 총탄에 맞아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두용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11판-4면-167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58-ㄹ-060)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