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두완(朴斗完)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1502464
  • 전몰일자 : 19500823

공훈사항

박두완 이등중사는 1929년 10월 28일 경상남도 김해군 구촌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일제의 패망과 광복에도 불구하고 사회가 혼란하던 1948년 1월 29일 서울시 용산구에 위치하고 있던 제1병참단에 입대하여 병참관련 특기교육을 이수하고 수도사단 제1연대에 배치되었다.
수도사단은 1949년 6월 20일 기갑연대, 제17연대, 포병대대 및 독립 제1대대를 기간으로 서울시 용산에서 수도경비사령부로 창설된 후 1950년 7월 5일 수도사단으로 개편되었다. 당시 제1연대는 제7사단에 배속되어 동두천 일대의 38도선 경계를 담당하고 있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박두완 이등중사는 즉각 38도선 방어전투에 투입되었다. 북한군은 동두천 축선에 제4사단과 40여 대의 T-34전차를 투입해 공세를 감행하고 있었다. 당시 국군은 T-34전차를 파괴할 수 있는 대전차화기가 없었다. 당장 서울이 위태로워졌다. 이에 육군본부는 서울 방어를 위해 수도권의 부대는 물론 후방지역의 부대까지 모조리 서울 북방에 투입하도록 명령하였다. 북한군 제3사단과 전차부대는 6월 25일 오전 초성리를 돌파해 동두천으로 진격하였다. 박 이등중사와 연대병력은 6월 29일부터 한강 및 시흥지구에 방어선을 구축하고 북한군 제7사단의 남하를 6일간 지연시켰으며 7월 6일에는 평택-진천-청주-보은-안동으로 철수를 시작하였다.
박두완 이등중사와 연대병력은 낙동강 남쪽인 반변천 일대에 북한군과 교전하면서 8월 3일 길안과 청송으로 철수하였다. 그때 진지 후방으로 침투한 북한군과 치열하게 싸웠으나 역부족으로 의성으로 철수하였다. 북한군 제12사단은 의성-영덕 간 50㎞에 달하는 공백이 발생하자, 국군의 저항을 전혀 받지 않고 8월 9-12일 사이에 청송-죽장-기계축선으로 공격하여 기계와 포항을 점령하였다. 박 이등중사와 장병들은 16일 안강 북쪽 양동리 지역으로 다시 투입되어 북한군과 공방전을 벌이면서 기계를 탈환하는 전공을 세웠다.
그는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삶과 죽음의 감각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박두완 이등중사는 1950년 8월 23일 양동리 부근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두완 이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02-ㅌ-09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