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두실(朴斗實)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0212592
  • 전몰일자 : 19501224

공훈사항

박두실 이병은 1930년 6월 29일에 경상남도 통영군(現 통영시) 한산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발발 후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을 저지하고 있던 1950년 9월 중순경 입대하여, 부산에 위치한 육군 제2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5사단 제36연대로 배치되었다.
박두실 이병이 부대에 배치될 당시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의 주력이 압록강 및 두만강으로 진격작전을 한창 진행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제5사단은 6·25전쟁 초기에 입은 손실로 1950년 7월 5일 해체되었다가 10월 8일 재창설 후, 국군과 유엔군의 주력이 북진작전을 한창 진행할 때인 10월 13일부터 영남 일대의 적 패잔병 및 게릴라를 토벌하는 작전에 투입되었다. 사단은 각 연대별로 책임지역을 할당하여 작전을 실시했는데, 제27연대는 포항, 제35연대는 진주, 제36연대는 김천에 주둔하면서 후방지역작전을 수행했다.
박두실 이병이 소속된 제36연대는 김천에 전술지휘소를 점령하고 소백산맥이 태백산맥으로 연결되는 지역의 적 패잔병 소탕을 위하여 제1대대를 영동, 제2대대를 거창, 제3대대를 김천 지역에 배치했다. 당시 북한군 패잔병과 좌익빨치산들은 수시로 산간지역 마을을 습격하여 양민들을 살해하고 보급품을 조달했다. 이에 사단은 경찰과의 긴밀한 협조로 적 936명을 사살하고 126명을 생포하는 등 많은 전과를 올렸다. 이러한 국군의 후방지역작전으로 수복지역은 점차 안정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이와 같이 제5사단이 적 게릴라 소탕작전을 실시하던 시기에 국군과 유엔군은 북진작전으로 압록강 및 두만강을 향해 진격했으나, 두 차례에 걸친 중공군의 기습적인 공격으로 다시 38도선으로 후퇴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단은 12월 5일경에 전방지역으로 투입되어 17번 국도상의 춘천에 배치하여 철수하는 부대에 대한 엄호작전을 실시했다. 사단은 엄호작전을 실시한 후 12월 10일부로 춘천 동북방 탑두울-배후령 간을 점령하여 방어준비를 실시했다.
제36연대는 가평 북쪽의 지암리 일대, 그리고 제27연대는 청평 동쪽의 호명산 일대에 배치시키고, 제35연대는 사단 예비로서 북한강 서쪽의 송암리 일대에 배치시켜 중공군의 공세에 대비하고 있었다. 박두실 이병은 12월 24일 지암리 일대 방어진지에서 소대원과 함께 중공군 침투부대와 교전 중 적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두실 이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31-ㄹ-053)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