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두신(朴斗信)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25064
  • 전몰일자 : 19500715

공훈사항

박두신 일병은 경상북도 예천군 개포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이 발발한 이후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선으로 철수를 거듭하고 있을 때인 1950년 7월 5일 육군에 입대하여 수도사단 제1연대에 배치되었다.
박두신 일병이 소속된 연대는 진천 북단 백곡천에 투입되었다. 진천-청주 축선은 중서부 지역에서 대전 또는 보은 방향으로 이어지는 대단히 중요한 접근로이며, 이 축선에서의 작전은 서측의 경부축선상의 작전에도 큰 영향을 주는 중요 축선이었다. 그러나 7월 8일 아침 적 제2사단의 전차를 동반한 압도적인 공격을 받아 적을 저지하지 못하고 잣고개로 물러났으며, 이로써 진천이 적의 수중에 들어가고 말았다. 이어 9일 아침 미처 부대정비와 진지편성을 마치기도 전에 또다시 적 제2사단 주력의 보·전·포 협동공격을 받게 되었다. 박 일병과 연대병력은 사력을 다해 방어하였으나, 결국 수차례의 교전 끝에 주저항선을 돌파당하였다.
박두신 일병과 연대병력은 7월 10일 청주의 미호천 남안으로 철수한 후 오근장역을 중심으로 새로운 진지를 구축하였다. 한편 연대의 철수를 뒤늦게 알아차린 적 제2사단은 양천산을 경유 남진하여 11일 아침 무렵 미호천 북방까지 진출하였다. 미호천 교량을 폭파한 후 진지보강에 주력하고 있던 박 일병과 연대병력은 적의 선두부대가 접근하는 즉시 야포로써 제압하고 항공지원을 요청하여 적 집결지를 강타하고, 다음날(12일)에는 군단 포병의 지원을 받아 적의 예상집결지를 집중사격하는 등 적의 공격을 분쇄하였다. 이어 연대는 13일에 미호천에서 접적이탈을 단행하여 청주 남쪽으로 철수하였다.
박두신 일병은 전투 경험이 많지는 않았지만 조국을 우리 손으로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최후까지 용감히 싸웠으나 1950년 7월 15일 보은 부근 전투에서 북한군이 쏜 탄환을 맞고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두신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09판-5면-100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02-ㅍ-03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