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두석(박두석)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0208892
  • 전몰일자 : 19510507

공훈사항

박두석 이등중사는 출생 일자 및 장소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에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사 일자 등을 고려하여 작성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 북한군의 총공세를 저지하던 1950년 9월 8일, 경남 부산의 육군 제2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6사단에 배치되었다.
박두석 이등중사가 전입했던 10월 중순, 제6사단은 38도선을 돌파하여 북진작전을 하고 있었다. 이후 사단의 선두부대는 압록강까지 진격했으나, 이때 중공군의 기습공격으로 청천강 선으로 철수했다. 이후 제6사단은 평북의 영원과 덕천 일대로 이동하여 국군 제2군단에 배속되었고, 이곳에 유엔군의 2차 총공세(일명 크리스마스 공세)가 있었으나, 이번에도 중공군의 기습공격을 받고 전 장병은 38도선으로 철수했다. 당시 제6사단은 38도선 상의 전곡-백의리를 잇는 고지군에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중공군은 1950년 12월 31일 야간에 서울을 향해 3차 공세(일명 신정공세)를 개시했다. 사단은 방어진지에서 중공군의 인해전술을 처음에는 격퇴했으나, 적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공격했다. 사단 장병들은 전투력이 열세하고, 설상가상으로 측후방이 적에게 차단당하여 더는 방어진지에서 싸울 수 없어 1951년 1월 1일 오후 8시에 철수하여 덕정리로 이동했다. 그곳도 이미 적이 점령하고 있어 의정부를 거쳐 서울 창동으로 이동했다. 이날 박두석 이등중사는 철수하던 중에 적의 기습적인 공격으로 큰 피해를 받았고, 그는 중상을 입고 부산의 제5육군병원으로 후송되었나, 몇 달간의 치료로 완쾌되어 복귀할 때인 4월 중순에 자신이 훈련 받았던 부산의 육군 제2훈련소로 전속되어 조교 임무를 수행했다.
박두석 이등중사가 소속된 육군 제2훈련소는 신병훈련에 집중하면서 주변 지역에 나타난 적 게릴라 소탕작전에도 수시로 참가하였다. 이에 훈련소는 조교들로 기동타격대를 편성하여 대비했다. 당시 부산지역에는 정부 주요기관과 군 시설이 많아 적 게릴라들의 표적이 되고 있었다. 그러던 중 5월 7일에 부산 인근의 삼랑진 일대에 적 게릴라(북한군 패잔병)들이 나타났다는 신고가 들어왔고, 그가 소속된 기동타격대는 즉각 출동하여 치열한 전투 끝에 격멸했다. 이날 그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들의 기습사격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두석 이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14판-6면-020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26-ㅁ-01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