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두병(朴斗秉)

  • 군별 : 육군
  • 계급 : 병장
  • 군번 : 0149945
  • 전몰일자 : 19510620

공훈사항

박두병 병장은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만리동(現 중구 중림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후 중공군의 참전으로 대한민국이 다시 위기에 처하자 1950년 12월 하순경 입대하여, 대구에 위치한 육군 제1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5사단 통신대로 배치되었다.
박두병 병장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1·4후퇴로 37도 선의 평택-안성선까지 물러난 국군과 유엔군이 전력을 회복 후 총반격을 개시하면서 23만 명의 대병력으로 서울재탈환 작전을 실시하고 있었다. 제5사단은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공세)를 저지한 다음 1951년 2월 5일부로 홍천 포위 공격을 개시하여 적 주력이 4일 동안 완강하게 저항하던 방어거점인 강원도 횡성 일대 317고지-412고지-247고지를 돌파하고 섬강 남쪽으로 진출했다.
이어서 홍천 우측방의 목표 점령을 앞둔 사단은 2월 10일에 대규모 중공군의 기동을 확인하고 야간 방어로 전환했다. 마침내 2월 12일 아침 사단은 중공군의 집중적인 공격(일명 2월 공세)을 받고 철수를 개시하여 제천 북쪽으로 이동하면서 영월군 주천리 일대에 新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사단은 중공군의 2월 공세 이후 국군 제1군단에 배속되어 단양-풍기 간의 주보급로 경계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박두병 병장이 소속된 사단은 3월 3일에 美 제10군단에 배속되어 3월 7일 제36연대가 봉복산(1,028고지)을, 제35연대가 태기산(1,261고지)을 목표로 공격을 개시했다. 이후 사단은 3월 14일에 적의 최후 거점인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에 위치한 태기산을 점령하고 신대리-백운동을 잇는 선으로 진출한 후, 다음날 북쪽의 운무산-흥정산을 잇는 선으로 진출하면서 최종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그 후 사단은 4월 10일 공격을 개시하여 4월 19일에 목표인 인제를 점령하고 그 북방 봉화봉과 월하리 일대로 진출하면서,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점령했다.
5월 하순 공세로 전환한 사단은 군단 우측 전방 부대로서 소양강 동쪽에 배치되었다. 6월 4일 원통 북방 서화리 일대의 후덕리-981고지-산두곡산(1,019고지)을 잇는 新캔자스선을 향해 제36연대와 제27연대가 병진으로 공격하여 6월 17일에 서화리 일대의 고지들을 점령했다. 이로써 사단은 7월 말까지 현 진지에서 진지강화와 재편성에 주력할 수 있게 되었다. 박두병 병장은 新캔자스선에서 분대원과 함께 예하부대와 통신망을 확인하던 중 6월 20일 적 포격에 맞아 안타깝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두병 병장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33-ㄲ-030)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