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두맹(朴斗孟)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0161188
  • 전몰일자 : 19510208

공훈사항

박두맹 이병은 경상남도 경주군 천북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1년 1월 초순 육군에 입대하였다. 그 시기에 입대하였던 장정들은 기초 군사훈련 과정조차도 제대로 거치지 못하고 전선에 배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박 이병 역시 워낙 긴급한 상황에 따라 기초훈련조차도 수료하지 못하고 수도사단에 배치되었다.
박두맹 이병이 전선에 배치될 당시 수도사단은 태백산맥 동쪽의 동해안에서 중공군의 공격을 받았으나 비교적 접적이 경미하여 38도선 북쪽 진지를 고수하고 있었다. 박 이병과 장병들은 아군의 전반적인 전선 조정에 따라 송계리-삼척 선으로 철수하여 부대정비에 주력하며 차후공격에 대비하여 전후방지역에 대한 대대 규모의 위력수색작전으로 접적을 유지하였다. 이때 중공군은 사단이 주문진 부근에서 신방어선으로 철수하는 틈을 이용하여 북한군 제69여단 및 길원팔 유격부대 약 6,000명이 강릉 부근까지 남하하여 강릉-구산리 선에서 방어와 유격활동을 하고 있었다.
박두맹 이병이 소속된 사단은 적에게 재편성과 재보급의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고 최대한의 피해를 강요할 목적으로 2월 2일 강릉과 구산리-대관령을 확보한 다음 경강국도 북방의 황병산-운계봉 선까지 전진하기 시작하였다.
박두맹 이병과 장병들은 야음을 이용하여 포위망을 압축한 후 기습공격으로 적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박 이병은 매사에 적극적이었고 언제나 앞장서서 용맹을 발휘했다. 그는 전투 경험이 많지는 않았지만 조국을 우리 손으로 지켜야 한다는 신념만큼은 누구보다 투철하였다. 최후까지 분전하며 북한군과 맞서 싸웠던 박두맹 이병은 1951년 2월 8일 삼척 부근 전투에서 북한군이 쏜 총탄을 맞고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두맹 이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유해(30묘역-판-26369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04-ㅂ-05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