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두만(朴斗滿)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95189
  • 전몰일자 : 19510518

공훈사항

박두만 일병은 1931년 1월 28일에 제주도 북제주군 한림면(現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공세를 격퇴하고 반격을 진행 중이던 1951년 3월 초순경 입대하여, 제주도에 위치한 육군 제1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자대로 충원되어 보충대로 배치되었다.
박두만 일병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에서 중공군 및 북한군과 공방전을 벌이고 있던 상황이었다. 보충대는 신병들을 부대까지 이송하는 임무 등 병력보충 업무에 전념했다.
1951년에 접어들면서 국군과 유엔군은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공세)를 저지하기 위하여 모든 전력을 경주했다. 국군과 유엔군은 반격작전으로 전환하여 중공군의 2월 공세를 분쇄하고 격멸작전을 벌여 3월 초에는 한강 남안-횡성-강릉을 잇는 선까지 진출하여 일직선으로 연결된 방어선을 확보했다.
후방지역에서는 북한군 패잔병 및 유격대와 좌익 빨치산 세력들의 습격, 파괴활동이 국군과 유엔군이 반격작전으로 전환하여 북으로 진격하는 시기에도 그치질 않았고, 중공군이 참전하자 더욱 심해졌다. 특히 제주도에는 ‘제주 4·3사건’(1948년 4월 3일 발생) 때 군·경의 토벌작전에서 살아남거나 한라산으로 도피한 좌익 세력 잔당들이 수시로 출몰하여 지서나 관공서 등을 습격, 파괴했다. 그리고 때로는 우익 인사에 대해 테러를 하거나 민간인을 납치하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이때마다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1훈련소 기간요원이나 박두만 일병을 포함한 보충대 장병들이 출동해서 이들을 소탕하곤 했다. 당시 상황이 워낙 긴급했고 병력도 부족했기 때문에, 박두만 일병이 소속된 제1훈련소는 신병훈련에 주력하면서도 동시에 인근에 출몰한 적들의 유격활동에 대응해야 했다. 훈련소는 조교를 포함한 기간요원 및 보충대 병력으로 기동타격대를 편성하여 이들에 대한 소탕작전을 해 왔다.
1951년 5월 18일 북제주군청 인근에 적이 출몰했다는 신고가 들어왔고, 훈련소 기동타격대원들은 즉각 출동하여 이들 소탕작전에 투입되었다. 이 전투에서 박두만 일병은 적 게릴라들을 색출하려고 분대원과 함께 탐색을 하다가 은거해 있던 적의 기습사격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전사자 명부에 전사 장소가 홍천은 오류로 추정)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두만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05판-5면-008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86-ㅁ-005)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