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동희(朴東熙)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0600712
  • 전몰일자 : 19520108

공훈사항

박동희 이등중사는 1929년 3월 3일 강원도 삼척군 미로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0년 12월 중순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사단 제12연대에 배치되었다.
박동희 이등중사의 입대를 전후한 상황은 험난하였다. 중공군의 제3차 공세가 서울을 향해 시작되면서 박 이등중사가 소속된 연대는 1951년 1월 4일 서울에서 37도선 평택까지 철수하였다. 박 이등중사와 장병들은 수원, 의왕 거쳐 한강 서울 재탈환작전에 참전하여 3월 15일 서울을 재탈환하였다. 중공군은 또 한 차례 서울을 점령하기 위해 4월 22일 대규모 공세를 감행하였다.
이후 5월 16일 중공군이 강원도 인제군 현리에서 대규모 공세를 감행하였지만 서부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되었다. 따라서 사단은 임진강 일대에서 소규모 매복전투, 상대방의 첩보 및 정보를 획득하기 위한 적진정찰 등의 작전을 계속하였다. 이어 5월 20일 문산-포천을 연하는 토페카선을 점령한 후 캔자스선 상의 영평을 확보하기 위해 문산 축선에 투입되었다.
박동희 이등중사가 소속된 연대는 고봉산 부근에서 경미하게 저항하는 북한군을 격퇴하고 일산을 경유 금촌으로 진출하였다. 10월 3일 이른 아침 1시간에 걸친 공격 준비 사격에 이어 오전 6시 공격이 시작되었다. 박 이등중사와 연대병력은 임진강상의 주진지를 확보한 가운데 적의 저항을 받지 않고 사미천 서안의 91고지와 146고지를 점령하였다. 이후 박 이등중사와 연대 장병들은 12월 28부터 문산 정면의 임진강 북쪽 두매리 부근에서 전초진지 쟁탈전에 투입되어 중공군 제63군 예하 제188사단과 대치 중이었다.
박 이등중사와 연대병력은 1952년 1월 3일 오전 8시 일제히 포문을 열어 두매리고지 일대를 집중사격하였고 곧이어 전폭기 4대가 측방 엄호 포격을 실시하며 적진을 향해 공격을 개시하였으나 탈환작전은 부진하였고 계속된 돌격로를 개척하면서 적진으로 돌입하여 마침내 중공군을 격파하고 122고지와 148고지를 탈취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조국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박동희 이등중사는 1952년 1월 8일 두매리 부근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동희 이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14-ㄴ-03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