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동희(朴東熙)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8201002
  • 전몰일자 : 19500625

공훈사항

박동희 이등중사는 충청남도 천안군 풍세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정치·사회적으로 혼란한 시기였던 1949년 8월 2일에 대전의 제25연대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연대직할대인 통신중대에 배치되었다. 이후 서울 영등포에 설치된 통신학교에서 주특기 교육을 수료함으로써 사단 통신대로 전속되었다.
박동희 이등중사가 소속된 제2사단은 동년 11월 5일에 안동지역으로 출동하여 태백산지구 일대에서 공비소탕작전을 실시하고 1950년 4월 14일에 다시 충남 대전으로 복귀했다. 그가 소속된 통신대는 공비소탕작전을 실시할 때마다 적극적인 통신 지원활동으로 작전을 원활하게 하는 역할을 했다.
국군은 1950년 6월 25일에 전 전선에 걸쳐 북한군의 기습공격을 받았다. 군사력에서 열세하고 방어준비태세도 미흡했던 국군은 북한군의 공격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전방의 방어체계는 붕괴되었다. 이에 육군총참모장은 후방의 사단들을 전방방어지역으로 증원토록 조치했다. 대전의 제2사단은 신속히 의정부 지역으로 이동하여 제7사단을 증원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에 사단은 우선 이동이 가능한 제5연대를 투입시켰다.
박동희 이등중사가 소속된 통신소대는 통신 지원을 위해 부대원들과 함께 제5연대를 따라 의정부로 이동했다. 당시 통신소대는 연대병력과 함께 6월 25일에 대전에서 기차로 출발하여 저녁 8시에 의정부 북방의 금오리에 도착했다. 연대는 즉시 축성령에 배치된 제3연대를 초월하여 포천 방향으로 반격을 하라는 명령을 수령하고 이동했다. 그러나 제5연대가 축성령에 도달했을 때, 그곳에 배치되어 있다는 제3연대는 없었고, 이미 그곳은 북한군이 점령하고 있었다. 그는 통신 지원을 위해 동분서주하다가 제5연대 장병들과 함께 철수하는 도중에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동희 이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16-ㅇ-01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