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동희(朴東熙)

  • 군별 : 경찰
  • 계급 : 경사
  • 군번 :
  • 전몰일자 : 19500917

공훈사항

박동희 경사는 1927년 3월 17일 경북 청도군 풍각면에서 출생했다. (경찰 입문 일자 미상). 그는 전몰 당시 경북도경 청도경찰서 소속으로 재직 중 청도 비슬산에서 전사했다.
제주 4·3사건(1948년)과 이듬해 여·순 사건으로 인하여 안보적으로 매우 어수선한 상황에서 지방공비 세력이 증가하자 정부는 군·경 합동으로 대대적인 공비토벌작전을 단행하기로 했다. 토벌작전은 3단계(제1단계: 1949.10.30-11.30, 제2단계: 12.1-12.15, 제3단계: 49.12.16-1950.2.28)로 시행했으며, 박 경사가 소속된 경북경찰은 제2단계 기간에 참여하여 대대적인 포위 및 수색작전으로 많은 전과를 올렸다.
1950년 6월 25일 오전 4시를 기해 북한군이 전 전선에 걸쳐 남침을 개시하자 경찰 비상경비총사령부는 각 도(道) 경찰국이 즉각 전투태세로 전환하도록 지시하고, 군경 합동작전태세에 돌입했다.
청도경찰은 경북경찰의 일부로서 아군이 지연전을 전개하여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하기까지 오열 색출, 정보수집, 주보급로 경비, 철도경비, 치안유지, 피난민 이동 통제·구호 임무를 수행했다.
박 경사가 청도경찰에 배치될 무렵의 전황은 낙동강 방어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유엔군이 인천상륙작전을 준비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 무렵 청도군에는 약 40여만 명의 피난민들이 몰려들었으며, 피난민이 몰려들자 청도경찰의 주 임무는 피난민 통제와 구호를 하는 오열을 색출하는 것이었다.
아군의 반격작전이 시작되자 오열 중 상당수가 비슬산에 들어가 게릴라전을 전개했다. 이리하여 청도경찰은 9월 16일부터 대대적인 잔적소탕작전을 전개했다. 이날 박 경사와 동료 경찰관들은 오전 6시에 청도경찰서를 출발하여 오전 10시에 고산리에 도달했다. 이곳에서 수 명의 잔적을 발견하여 추격하는 가운데 교전이 벌어져 공비 2명을 사살했다. 공비들은 낙성지 방향으로 도주하여 비슬산으로 잠적했다. 청도경찰은 각북면으로 이동하여 숙영한 뒤 다음날 오전 5시부터 비슬산에 대한 수색작전을 실시했다. 9월 17일 수색정찰을 하던 청도경찰은 오후 3시경 비슬산 8부 능선에서 적으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약 2시간에 걸친 교전에서 적 3명을 사살했으나 청도경찰대원도 3명이 전사하고 말았다. 이날 박동희 경사는 휘하의 병력을 지휘하여 적을 격퇴하다가 적의 집중사격을 받고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동희 경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6-ㅊ-022)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