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동환(朴東煥)

  • 군별 : 육군
  • 계급 : 중위
  • 군번 : 12942
  • 전몰일자 : 19500921

공훈사항

박동환 중위는 경상북도 대구시 동인동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1945년 일제가 패망하면서 광복을 맞이했으나, 조국은 분단되어 있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48년에 수립되었으나 정치 및 사회적으로는 매우 혼란스러웠다. 그는 조국을 위해 그리고 가족을 위해 군입대를 결심하고, 1948년 9월 초순에 서울 태릉에 위치한 육군사관학교 제8기로 입교했다. 이곳에서 6개월간의 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1949년 3월 2일에 육군소위로 임관하여 제1사단에 배치되었다.
박동환 중위는 전선에 배치되어 다부동 전투에 투입되었다. 1950년 8월 29일까지 고령에서 함창에 이르는 낙동강 전선에 북한군 제2군단(제3, 제13, 제15사단)을 투입하여 대구로 집중하였으나 박 중위와 사단 병력이 유엔군의 지원을 받아 북한군 전차를 파괴하는 등 저지 사격을 가하면서 북한군을 저지하였다. 그들의 막강한 저항에 부딪친 북한군은 현풍-왜관-328고지-수암산-유학산-신주막 선에서 저지되었다.
사단은 8월 30일 전투지경선을 조정하고 741-팔공산 북방 중앙선까지 담당하여 대구 북쪽의 방어진지 편성에 주력하였으며, 박 중위와 제1사단 장병들은 팔공산 북방 정면에 배치되었다. 9월 4일 북한군 제3사단이 부대 간격을 따라 왜관-다부동 도로 남쪽 464고지로 침투하고 있었으며, 좌 측방 왜관도 무인지경이 되고 우 측방에서는 북한군 제13사단이 다부동까지 진출하고 있었다. 가산으로 진출하려던 박 중위와 사단 병력은 다음날 5일까지 북한군 제1사단 1개 대대의 완강한 저항을 받아 철수하고 말았다.
박동환 중위의 진두지휘 아래 사단 병력은 다부동 일대의 정해진 목표를 향해 수차례 공방전을 전개하였고, 연일 반복되는 공방전에서 매일 평균 600여명의 손실이 발생하여 병력이 날로 감소하였다. 박 중위와 사단 병력은 가산을 탈환하고자 9월 중순까지 서로 뺏고 빼앗기는 공방전을 거듭하면서 방어선을 지켜냈다.
박 중위와 장병 모두는 혼연일체가 되어 투혼을 발휘하였다. 박동환 중위는 소대장으로서 선두에서 소대원을 지휘하며 용감히 싸우다가 전투 중 적의 총탄에 맞아 1950년 9월 21일 팔공산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동환 중위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11-ㅈ-09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