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동화(박동화)

  • 군별 : 육군
  • 계급 : 대위
  • 군번 : 203670
  • 전몰일자 : 19501025

공훈사항

박동화 대위는 출생에 대한 기록이 없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고자 일어섰다. 박 대위는 예비역이었으나, 1950년 9월 중순 재소집에 즉각 응하여 제3사단 수색중대에 배치되었다.
박 대위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북한군과 유엔군이 반격작전을 전개하고 있었고, 제3사단은 동해안 축선을 따라 진격 중인 상황이었다. 제3사단은 9월 17일 형산강을 도하하여 반격을 개시했다. 이때 적 제5사단도 쉽게 물러나지 않고 강력하게 저항했다. 사단은 해·공군의 폭격 지원하에 치열한 전투 끝에 18일 도하작전에 성공했고, 여세를 몰아 9월 22일 흥해까지 진격했다.
국군은 22일 추격작전으로 전환했고, 사단은 23일부터 추격작전을 전개했다. 사단은 일일 평균 17.3km의 속도로 진격하여 영덕, 울진, 삼척을 차례로 탈환하고, 30일에는 강릉을 탈환했다. 사단은 10월 1일 인구리 북쪽에서 38도선을 넘어 북진함으로써 최초의 38도선 돌파부대가 되었다. 사단 장병들은 10월 3일 강원도 간성을 점령하고 6일 장전을 돌파하여 8일 남대천 남방에 도착하여 원산 공격 준비를 했다.
북한군은 원산 방어를 위해 동해안방어사령부를 편성하고 패잔병과 중원부대 2만여 명을 동원하여 원산 방어에 임했다. 국군 제1군단은 원산 공격을 위해 우선 시가지를 감제할 수 있는 시가지 동서 고지군을 점령하기로 하고, 제3사단은 동쪽 고지군을 수도사단은 서쪽 고지군을 공격하도록 했다. 사단은 10월 10일 새벽에 공격을 개시하여 완강히 저항하는 적을 물리치고 원산을 점령했다. 12일 이승만 대통령은 원산을 방문하여 사단 전 장병에게 1계급 특진의 영광을 베풀었다.
사단은 영흥까지 진격했다가 다시 고원 동쪽 전탄강과 송전반도 및 그 서쪽 소두류산 일대의 잔적 소탕을 위해 이동하여 수색정찰과 전투를 지속했다. 이어 사단은 미 제10군단의 원산 상륙을 엄호하기 위해 또다시 원산으로 이동하여 10월 25일까지 외곽과 시내에 대한 경계를 했다. 박 대위는 수색대원으로서의 자부심이 대단했고, 항상 수색작전과 공격작적에 앞장섰다. 박 대위는 중대원을 이끌고 잔적 소탕작전을 실시하던 중, 10월 25일 적 패잔병의 기습사격을 받고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동화 대위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2판-1면-203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2-ㅂ-09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